Q.『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를 편집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표지 시안을 처음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시안을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설렜거든요. 아직 경력이 길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수많은 표지 시안을 보았는데 이렇게 설레는 시안은 드물었어요. 실물로 얼른 받아보고 싶어 남은 편집 작업에 더욱 열중했던 기억이 있네요.
Q.가장 흥미로웠던 식물은? 책의 첫 장에서 다루는 ‘교살무화과나무’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익숙한데 ‘교살(strangler)’이란 무서운 단어가 붙으니 그 정체가 궁금했거든요. ‘교살’은 이 나무가 생장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이름인데, 이 나무는 다른 나무의 가지 위에서 씨앗을 틔우고 자라나서 그 나무를 타고 오르며 자라다가 결국 그 나무를 죽이고 홀로 서요. 이런 독특한 생태도 재미있었지만,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나무가 인류 역사의 시작을 함께했다는 거예요.
이 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죠. “역사는 나무와 함께 시작한다. 아마도 모든 역사가 그렇게 시작하리라.” 저자는 뜨거운 아프리카 초원에서 유독 울창하게 나무 그늘을 드리우는 교살무화과나무 밑이 선사시대의 초기 인류가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장소가 되었을 거라고 해요. 역사의 시작을 사람들이 모여 어울리는 것으로 본 저자의 시각이 마음에 들었고, 울창한 나무 그늘을 보며 초기 인류의 모습을 떠올리는 상상력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Q.참고 도서가 있다면?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일종의 속편입니다. 저자인 사이먼 반즈가 이전에 쓴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가 있거든요. 그래서 편집할 때 자연스레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를 가장 많이 참고했습니다. 본문과 표지 디자인을 일관되게 가져가고, 교정 원칙도 통일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도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와 다른 차별점이 있는 책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전편과 달리 표지 디자인을 컬러(4도)로 하기로 결정했죠. 다행히 두 권이 세트로 보일 정도로 통일감 있으면서도, 각각의 개성이 잘 사는 표지로 나온 것 같습니다. 두 권을 나란히 책장에 두면 꽤 만족스러울 거예요.
Q. 콘텐츠 광으로 알고 있습니다:)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와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추천해 주세요! 유튜브 영상 한 편을 추천하고 싶네요. ‘인터브이’라는 채널의 영상 <국립공원연구원은 무엇을 연구하고 있나?│진원의 나이테>입니다. 국립공원연구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인데요. 영상 촬영과 편집이 무척 감각적이고, 무엇보다 인터뷰 주인공인 진원이라는 분이 하시는 말씀들이 인상 깊어요. 편집하면서 이 영상을 여러 번 다시 봤는데, 볼 때마다 진원 님의 나무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진심이 저한테 전염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애정을 갖고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님께 한 마디 그저 감사합니다.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제가 편집한 책 중에서 처음으로 온라인서점 종합베스트에 든 책이에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게 처음이라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디 남은 연말 따뜻하게 잘 마무리하시고,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엔 좋은 책들 더욱 많이 만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좋은 책 만들기 위해 계속 애써보겠습니다. :)
Q. 올해 인생 책은? 한 권만 꼽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세 권으로 할게요. 『귀신들의 땅』 『세계 끝의 버섯』 『영화도둑일기』로 하겠습니다. 『귀신들의 땅』은 올해 읽었던 소설 중 가장 좋았고, 『세계 끝의 버섯』은 올해 읽은 논픽션 중 가장 좋았습니다. 『영화도둑일기』는 조금 독특한 책인데,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어둠의 경로’까지 이용해본 시네필(영화애호가)이라면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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