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사람이 죽으면 그가 경건한 사람이든 악인이든 주간 상태, 즉 구약성경이 스올이라고 하고 신약성경이 하데스라고 하는 상태로 내려간다는 것이 오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견해이다. 이 지하 세계는 벌이나 상을 받는 장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장소이다. 이곳은 단지 꿈꾸듯 지상에서의 생애를 반추할 뿐인 두려운 거처이다. 의식이 흐리고 선잠 든 것처럼 활동이 정지되어 있는 곳으로서, 이곳에서는 삶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삶의 기쁨이 슬픔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렇게 천당도 지옥도 아닌 격리된 장소에 죽은 사람이 모두 모여 항구적으로든 아니면 일반적 부활 때까지든 머물러 있다는 개념이 일반인들 사이에 다소 널리 퍼져 있을 수도 있고, 또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한 회화적 묘사들이 생기게도 했겠지만, 그것이 성경의 확고한 가르침은 아니다.
스올과 하데스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항상 같은 뜻으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것이 언제나 경건한 자들과 악인들이 다 같이 내려가는 장소를 가리킨다면,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악인들에 대해서 스올에 내려가는 것을 경고로 삼을 수 있겠는가(욥 21:12; 시 9:17; 잠 5:5; 7:27; 9:18; 15:24; 23:15)? 이런 구절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용어들이 때로는 악인들이 사후에 형벌을 받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어들이 항상 그런 뜻만 갖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p.297
"루터교인들은 신비적 연합의 교리를 '인간론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따라서 신비적 연합이 신앙에 의해 확립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들은 구원론 후반부에서 이를 언급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개혁파 신학의 신비적 연합 개념을 공정하게 다룰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신비적 연합의 영원한 기초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객관적인 실현은 전혀 무시한 채 우리 삶에서의 주관적인 실현만 취급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비적 연합에 있어서 우리의 개인적이며 자각적인 참여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혁과 신학은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신론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이 중요한 주제를 보다 공정하게 취급한다. 개혁파 신학은 신비적 연합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와 신자의 주관적인 연합뿐만 아니라, 그 연합 배후에 있으며 이의 기초가 되는 연합 -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 연합이 궁극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 즉 구속의 경륜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소유가 된 자들과의 언약적 연합 및 그 영원한 경륜에서 관념적으로 확립된 신비적 연합,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에서 객관적으로 성취되는 연합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한다"-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