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개혁 교회의 모든 지역에서 폭넓게 호응을 받았다.
사방에서 그때까지 나타난 신앙의 도리의 대중적인 요약 가운데 최고의 것으로 환영받은 것이다. 타국의 저명한 신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이 요리문답의 장점들을 칭송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심지어 영감에까지 근접하는 성령의 특별하신 영향력의 산물이라고 보기까지 했다. 탁월한 학식을 갖춘 신학자들은 널리 이 요리문답을 신앙 교육의 체계의 기초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요리문답에 대한 해설서, 이를 기초로 한 설교집들이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출간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팔츠 지방에서는 처음부터 공적인 신앙의 규범과 표준으로서 완전한 권위를 발휘했다. 대학교에서는 신학 교육의 기초가 되었으며, 모든 교회들과 학교들에게도 소개되었고, 일년에 한 차례씩 그 내용 전체를 반복하여 설명하고 공부하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교회들에서는 요리문답 교육의 정상적인 체계가 세워졌는데, 매 주일 오후를 요리문답 공부 시간으로 정하여 성인들과 어린 아이들 모두가 가르침을 받도록 했다. 우르시누스는 신학 교육에 있어서도 스스로 자신의 신학 강의들과 더불어 일년에 한 차례씩 요리문답의 본문 전체를 훑는 것을 일반적인 규범으로 삼았다.
1591년 하이델베르크에서 적절하고도 순전한 형태의 해설서가 출간되었는데, 그것은 우르시누스 자신이 직접 저술한 것으로 이 최초의 해설서가 역사상 기록된 것 가운데 최고의 것으로 인정받아왔다. 요리문답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면에서 다른 어떠한 해설서도 그것에 비견될 수가 없는 것이다.
독일 종교개혁자, 신학자.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1550-1557년에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2)의 작성자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 이 요리문답은 멜란히톤의 정신이 가득 들어있으며, 그가 좋아한 신학자 페트루스 마터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1557년에 제네바에서 오래 머물면서 공부한 뒤 브레슬라우에서 가르쳤고, 1559년에 그곳에서 성례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면직당하였다. 베르미글리의 요청으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1561년에 우르시누스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로 임명하였다. 우르시누스는 1568년까지 그곳에서 교의학을 강의하였다. 1570년에 프리드리히는 우르시누스의 긴급한 요청에 따라 자기 관할 지역에 대한 교회권징안을 채택하였다. 우르시누스는 1577년에 노이슈타트에서 잔키우스와 계속해서 함께 있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를 떠났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멜란히톤의 「신학총론」은 하이델베르크의 개혁파 목사들에게 대대로 표준 도서가 되었다.
*크리스천다이제스트 ‘세계기독교고전’ 소개
크리스천의 영적 성숙과 진정한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기독교 고전들이 많이 나와 후세에도 오래도록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 고전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영원한 보물이며, 신앙의 성숙과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2천 년이 넘는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 세계 각국에서 저술된 가장 뛰어난 신앙의 글과 영속적 가치가 있는 글만을 모아서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로 출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