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자유롭고도 열정적인 정신과 인격을 보여주는 책
마르틴 루터의 『탁상담화』는 1566년 처음으로 출판되었으나, 가톨릭교회의 분노를 사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명령으로 모두 소각되었다. 이후 이 책은 모두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1626년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영국으로 보내졌고, 우여곡절 끝에 1646년 영어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이 역서는 그 책을 국내 처음으로 완역한 것이다.
위대한 종교개혁자의 재능과 성향과 태도를 『탁상담화』만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은 없다. 『탁상담화』는 루터의 말을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 특히 개혁자의 말년까지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안토니 라우터바흐와 요한 아우리파버가 취합한 책이다. 기록자들은 루터가 친구를 편하게 만나거나, 산책을 하거나, 목회의 일을 수행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하거나 강론한 내용을 남김없이 그들의 노트에 기록했다.
『탁상담화』는 4백년을 지나오는 동안 독일 개신교도들에게 성경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다. 수수한 문체에 담긴 다양한 내용들은 종교개혁 1세대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진리들을 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깨닫게 하는데 아주 요긴한 역할을 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시대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꼭 필요한, 바르고 깊고 풍성한 진리를 많이 발견할 것이다.
종교개혁자이자 개신교 신학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스펠트와 아이제나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교에 입학하여 1502년과 1505년에 각각 문학사와 문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출세를 열망하던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대 박사 과정에 진학하지만, 슈토테른하임에서 만난 뇌우 아래서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한다. 곧바로 학업을 중단하고 2주 만에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1507년 사제로 안수받게 된다. 1512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로 성서학을 가르치며 발견한 ‘칭의’의 진리는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자의 길을 걷게 만든다.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된다. 교황의 파문과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추방령(1521년), 농민전쟁(1525년),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1525년) 등 1546년 2월 18일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굴곡의 시기를 거치지만,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에 사로잡힌 신학자로서 개신교 신학의 대문을 열게 된다.
독일어 성경번역을 통해 성경의 대중화를 이끌어 표준 독일어 형성에도 공헌한 루터는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교육, 문화, 사회복지, 법, 정치를 아우르는 종교개혁의 이론적 토대와 방향을 제시한다. ‘루터의 3대 논문’으로 꼽히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교회의 바벨론 포로』『기독교인의 자유』(이상 1520년)가 종교개혁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저술로 꼽히지만, 루터는 자신이 집필한 3천여 권의 책 가운데 『노예의지론』(1525년), 『대교리문답』『소교리문답』(이상 1529년)만을 수작으로 추천한다. 그중 『대교리문답』은 개신교 최초의 교리문답서이자 개신교적 성경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각 교파 교리문답서의 지침이 된다.
성경을 방치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비를 구하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읽고 전합시다. 성경이 살아남아 흥왕하는 동안에는 모든 백성이 국가와 더불어 번영을 누립니다. 성경은 모든 학문과 예술의 머리이고 여왕입니다. 혹시 신학[성경과 겉도는]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라도 나는 지푸라기 하나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 6」중에서
교회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첫째로, 우리가 아담의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된 자들임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이 당하신 고난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셋째로, 이 세상이 우리의 본향이 아니고, 우리는 다만 나그네와 행인이며, 다른 세상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에 관하여 · 373」중에서
보헤미아 사람 헤닝(Henning)이 루터 박사에게 마귀가 왜 그토록 인간을 미워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압니다. 제후 게오르크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그래서 밤낮 나를 해칠 궁리를 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에게는 내가 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인간의 미움이 그런 것일진대, 마귀의 미움을 어떻겠습니까?”
---「마귀와 그의 일에 관하여 · 592」중에서
하나님께서는 황제나 왕이나 제후를 다루실 때 어린아이가 카드를 가지고 놀듯이 다루십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카드가 생기면 늘 가지고 다니면 놀지만, 나쁜 카드가 생기면 금방 싫증을 느끼고는 의자 밑에 던져둡니다. 하나님께서 훌륭한 군주들을 만나실 때도 그와 같습니다. 그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들이 본분을 떠나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들을 권좌에서 내쳐 버리십니다.
---「제후들과 권력자들에 관하여 · 774」중에서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남긴 진리의 말
한 시대의 역사를 대하면서 여러 사건과 사상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주목하여 볼 가치가 있는 개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루터이다. 역사상 그렇게 거대한 사건들이 그처럼 한 사람의 용기와 지혜와 열정을 축으로 전개된 경우가 없었다. 『탁상담화』는 그런 대 종교개혁자의 재능과 성향과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루터는 살아생전 수많은 말을 남겼다.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남김없이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루터의 말년까지 동고동락했던 안토니 라우터바흐와 요한 아우리파버가 주축이 된 기록자들이 루터가 친구를 만나거나, 산책을 하거나, 목회를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하거나 강론한 내용을 열정적으로 받아 적었다. 그들은 개혁자가 힘 있게 말씀을 전할 때든, 실의에 빠져 있을 때든 항상 그의 곁에 있어 주었다. 매우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그들 중 한두 사람은 개혁자의 의도를 읽고 그것을 노트에 기록했다.
이 기록들이 루터 사후 『탁상담화』라는 이름 아래 출간되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진영에 가담한 군주들은 갓 출범한 종교개혁의 대업을 더욱 진척시키기 위하여 루터의 『탁상담화』의 조속한 출판을 독려하고, 자신들의 영토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책이 출판되면 항상 비치하여 교인들이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탁상담화』의 첫 독일어 판은 1566년 아이슬레벤에서 요한 아우리파버의 편집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루터의 『탁상담화』가 자신의 권력기반에 가한 타격이 적지 않음을 깨달아서, 당시 황제를 압박하여 제국 전역에서 그 책을 수거하여 소각할 것을 명령하였다. 책을 소지한 사람도 화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공포하게 만들었다. 칙령이 신속하게 집행되어 어디서도 인쇄본은 물론 필사본으로조차 『탁상담화』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1626년 독일인 카스파루스 반 슈파르가 낡은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을 때 깊은 구덩이에서 『탁상담화』의 인쇄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책은 질긴 린넨 천으로 둘둘 말린 채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당시 페르디난트 2세가 독일을 다스릴 때였는데, 황제 또한 개신교의 박해자였으므로, 그는 이 책을 영국으로 보냈고, 우여곡절 끝에 1646년에 영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모든 시대에 꼭 필요한 꾸밈없는 진리
『탁상담화』에는 루터의 자유롭고도 열정적인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루터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정신을 교황 제도 아래 가둬온 사탄의 난공불락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 시대에 세움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깊고도 견고한 판단은 그가 직접 펴낸 여러 저서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후에 출판된 이 빛나는 담화록에는, 복음 진리를 힘써 전한 그의 열정과 헌신이 풍성히 배어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시대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꼭 필요한, 바르고 깊고 풍성한 진리를 많이 발견할 것이다.
야회복이 아닌 집 안에서 입는 편한 옷과 같은 수수한 문체로 진술한 교훈들이어서, 지적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책에 나오는 다양한 내용들은 종교개혁 1세대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진리들을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하여 깨닫게 하는데 아주 요긴한 역할을 했다. 복음의 원수들이 이 책을 없애려고 그다지도 혈안이 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급되어 자신들의 미신과 성직 위계 제도, 현세적 신앙, 위선, 불경건이 치명타를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항상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책은 종교개혁자의 평소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므로, 책의 내용을 공식적인 글이나 설교처럼 긴장의 끈을 바짝 죄고서 집필한 것과 같은 위치에 놓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위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루터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서 언어와 태도에 큰 차이가 없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루터는 아주 독특한 어조와 필치의 설교와 글로써 청중과 독자들의 마음에 직설적으로 다가갔으며, 의사전달을 더욱 생생하게 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투박하고 조야한 비유와 예화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일 개신교도들에게 성경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린 책
이 책은 큰 호응을 받아 처음 십 년 내에 여러 번 재쇄를 기록했고, 4백년을 지나오는 동안 독일 개신교도들에게 성경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다. 잉글랜드 의회는 내전이 끝나자 『탁상담화』를 영어로 번역하도록 지시했다.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가톨릭의 관습과 신념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개신교 사상을 널리 보급하려는 의도였다. 『탁상담화』의 호소력은 개신교도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오늘날은 루터의 사상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포함하는 모든 교회의 영적 공동 자산의 일부가 되었다. 유력한 가톨릭 신학자의 말대로 “오늘날 우리는 모두 루터의 추종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