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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클래식 80

두려움 없는 삶에 대하여

에픽테토스 스토아 철학 전집

지은이 에픽테토스
옮긴이 박문재
출판사 현대지성
발행일 2026-10-13
판형 150*225
쪽수 624쪽
ISBN 9791139739282
정가 종이책 : 28,000원 | 전자책 : 22,000원
분야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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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여도

끝내 삶의 주인으로 남는 법

 

◆ 에픽테토스의 지혜 전체를 한 권에 담은 국내 최초 단권 완역본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읽고 직접 인용한 삶의 철학

◆ 니체, 괴테, 쇼펜하우어가 사랑한 책, 그리스어 원전 완역

 

 

*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왜 하루 전체가 무너질까

 

별일 아닌 말인데 하루 종일 마음에 남는다. 일이 하나 꼬였을 뿐인데 “나는 왜 늘 이럴까”에까지 생각이 번진다. 비난은 몇 초면 끝나지만 우리는 그 말을 몇 시간, 때로는 며칠씩 마음속에서 반복한다. 실제 사건보다 내가 붙인 해석이 더 오래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사람은 사건 때문에만 흔들리지 않는다.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때문에 더 흔들린다. 2천 년 전 에픽테토스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사건과 내가 그 사건에 내린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불안은 둘을 하나로 만들어버린다. “답장이 없다”가 “나를 무시한다”가 되고, “수정이 필요하다”가 “나는 능력이 없다”로 번진다. 이 책은 그 사이를 다시 벌려놓는다. 사실은 어디까지이고, 그다음부터가 내 해석인지 알아차리게 한다. 그에게 철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이 나를 끌고 가기 전에 한 번 멈춰 보는 훈련이었다.

 

 

* 오늘 하루는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

 

대신 묻는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사가 “이게 전부예요?”라고 했을 때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고, 지금 고쳐야 할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묻는 것. 건강검진에서 재검 통보를 받았을 때 머릿속으로 최악의 미래를 끝까지 달리지 않고, 검사를 예약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누군가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을 때 “나를 무시한다”고 단정하지 않고, 확인된 사실은 ‘아직 답이 없다’는 것뿐이라고 멈춰 서는 것.

에픽테토스를 읽고 달라지는 것은 세상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결과에 마음을 다 쓰지 않고, 지금 내가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곳으로 힘을 되돌릴 수 있게 된다.

 

 

* 빼앗길 수 있는 것과 빼앗길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법

 

노예로 태어난 에픽테토스가 평생 파고든 주제는 뜻밖에도 ‘자유’였다.

몸은 구속될 수 있다. 재산은 빼앗길 수 있다. 지위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고, 평판은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로 뒤집힐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에픽테토스의 답은 작지만 단단하다.

 

무엇을 믿을지 판단하는 힘.

무엇에 동의할지 선택하는 힘.

그 상황에서 어떤 사람으로 행동할지 결정하는 힘.

 

그는 자신의 선택의지를 “헐값에 팔지 말라”고 가르쳤다(담화록 제1권 2장).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내 판단과 선택을 돈, 평판, 두려움, 권력에 넘겨주지 않는 자유.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자유는 거창하지 않다.

삶이 나를 흔들 수는 있어도 내가 나를 넘겨주지 않는 것.

그 마지막 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에픽테토스가 말한 자유다.

아리아노스가 루키우스 겔리우스에게 보낸 편지

 

제1부 빼앗길 수 없는 자유의 시작

 

제2부 세계의 질서 속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법

 

제3부 권력과 시련 앞에서 나를 지키는 길

 

제4부 불안은 사건이 아니라 판단에서 시작된다

 

제5부 철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된다

 

제6부 몸과 세상이 나를 시험할 때

 

제7부 세상 한가운데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

 

제8부 자유를 얻으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제9부 자유를 가로막는 착각부터 버려라

 

제10부 관계와 의무 속에서 자유를 실천하는 법

 

제11부 철학은 반복할 때 삶이 된다

 

제12부 흩어진 기록에서 되찾은 목소리

 

해설 | 박문재

 

더 깊이 읽기 | 인상과 선택의지, 에픽테토스의 정수를 내 것으로 만드는 두 개의 열쇠

 

에픽테토스 연보

지은이 ∥ 에픽테토스 (Epictetus, 약 50–135)

노예로 태어나 ‘인간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평생 탐구한 로마 제국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히에라폴리스 출신으로, 젊은 시절 로마로 옮겨 네로 황제의 궁정과 연결되어 있던 해방 노예 에파프로디토스의 소유가 되었다. 이 시기에 당대의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철학을 배웠다.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한 스승의 가르침은 그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해방된 뒤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서기 90년대 초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철학자들을 이탈리아에서 추방하자 그리스 북서부 니코폴리스로 옮겨 철학 학교를 세웠다. 그의 교실에서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죽음과 질병, 권력과 명예, 인간관계와 욕망 앞에서 자기 판단을 잃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끊임없이 묻고 연습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상류층 제자들을 통해 로마 사회에 널리 퍼졌고 훗날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유에도 이어졌다.

에픽테토스 철학을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무엇이 내게 달려 있고, 무엇이 내게 달려 있지 않은가?” 몸과 재산, 평판과 지위, 타인의 행동과 결과는 완전히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무엇에 동의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사람으로 행동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자유를 빼앗긴 처지에서 출발한 에픽테토스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유의 본질을 사유했다. 훗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승 루스티쿠스를 통해 그의 『담화록』을 접했고, 『명상록』에서 에픽테토스의 말을 직접 인용했다. 이후 몽테뉴와 파스칼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철학은 인간이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삶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사유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는다.

 

 

 

옮긴이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는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플라톤 국가』,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 쇠사슬도 꺾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탄식하고 슬퍼하며 감옥에 있어야 합니까? 내가 유배를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렇다 해도 내가 즐겁게 웃으며 태연히 유배를 떠나는 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비밀을 털어놓아라.”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실직고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내게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너를 결박하겠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결박하겠다고요? 내 다리는 묶을 수 있겠지만 내 선택의지까지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제우스에게도 불가능합니다.”

-『담화록』 제1권 제1장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하여」, 29쪽

 

◆ 자신의 선택의지를 헐값에 팔지 마라

황소가 하루아침에 황소가 되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단번에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부터 단련하고 충분히 준비해야 하며, 자신과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함부로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당신은 오직 한 가지, 곧 자신의 선택의지를 어떤 값에 팔 것인지만 생각하십시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헐값에 팔지 마십시오. 그러나 위대하고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마도 소크라테스나 그와 같은 사람들의 몫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본성적으로 둔하다는 이유만으로 애쓰고 힘쓰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 『담화록』 제1권 제2장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다움을 지키는 법」, 37쪽

 

◆ 잘하려는 마음보다 ‘좋은 평가’를 바랄 때 불안이 시작된다

불안해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만일 그가 자기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키타라 연주자는 혼자 노래할 때는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소리가 매우 아름답고 연주 솜씨가 뛰어나다 해도 극장 무대에 서면 불안해합니다. 그는 노래를 잘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 좋은 평가까지 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중의 평가는 자기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아는 영역에서는 자신감을 보입니다.

-『담화록』 제2권 제13장 「불안에 대하여」, 198쪽

 

◆ 한 번의 분노는 다음 분노를 더 쉽게 만든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일을 습관으로 만들고,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싶다면 그 일을 하지 말고 그 대신 다른 일을 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영혼의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분노했다면, 한 번 화를 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분노하는 습관까지 한층 더 키운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당신은 분노라는 불에 새로운 땔감을 던져 넣은 것입니다. 당신이 성적 유혹에 굴복했다면, 그것을 단지 한 번 패배한 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자신의 무절제를 더 강하게 만들고, 거기에 힘을 보태준 것입니다.

-『담화록』 제2권 제18장 「인상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가」, 230쪽

 

◆ 전쟁에서도 빼앗기지 않은 자유를 욕망에 내줄 수 있다

트라소니데스는 전쟁터를 숱하게 누빈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전쟁터에서는 어느 적도 나를 노예로 만들지 못했건만, 하찮은 노예 소녀가 나를 완전히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가련한 사람이여, 당신은 어린 소녀의 노예가 되었으면서 여전히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노예 소녀에게 선물을 보내고 애원하며 웁니다. 그러다가 일이 조금만 잘 풀리면 의기양양해집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어떻게 자유롭겠습니까?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자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 『담화록』 제4권 제1장 「자유에 대하여」, 407쪽

 

◆ 우리를 흔드는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판단이다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관한 판단이다. 예를 들어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라면 소크라테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죽음이 두렵다는 판단, 바로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해받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슬퍼할 때에는 결코 다른 사람을 원인으로 지목하지 말고 자기 자신, 곧 자신의 판단을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행동이다.

-『편람』 제5장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판단이다」, 498~499쪽

 

◆ 질병은 몸을 방해해도 ‘나’까지 방해할 수는 없다

질병은 육신에는 방해가 되지만, 선택의지가 원하지 않는 한 선택의지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다리를 저는 것은 다리에는 방해가 되지만 선택의지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네게 닥치는 모든 일을 두고 이와 같이 말하라. 그러면 그 일이 다른 어떤 것에는 방해가 되지만, 너 자신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칠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 그것을 다루기 위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면 인내력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욕설을 들으면 관용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편람』 제9~10장 「선택의지는 방해받지 않는다」·「인상에 대처할 능력을 찾아라」, 501쪽

 

◆ 배역을 고를 수 없어도 어떻게 연기할지는 내 몫이다

너는 연출자가 원하는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가 짧은 연극을 원하면 짧은 연극에 출연하고, 긴 연극을 원하면 긴 연극에 출연한다. 그가 네게 가난한 사람의 역할을 맡기고자 한다면 그 역할도 훌륭하게 연기하라. 다리를 저는 사람, 통치자, 평범한 시민의 역할을 맡겨도 마찬가지다. 네게 주어진 배역을 훌륭히 연기하는 것은 네 몫이다. 그 배역을 정하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다.

-『편람』 제17장 「네게 주어진 배역을 훌륭하게 연기하라」, 507쪽

에픽테토스의 교실은

로마판 ‘인생 상담소’에 가까웠다

 

고대 철학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근엄한 철학자가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고, 제자들은 조용히 받아 적는 장면이다. 에픽테토스의 교실은 꽤 다르다. 여기에는 황제의 눈치를 보는 관리가 들어오고, 법정에 갈 일이 걱정되는 사람이 찾아오고, 공연을 앞두고 벌벌 떠는 음악가가 앉아 있다. 사랑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던진 군인도 등장한다. 그가 다루는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보다 “나는 왜 저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가”에 훨씬 가깝다. 실제 목차만 펼쳐봐도 불안, 질병, 고독, 우정, 권력, 명예, 가난, 분노가 줄줄이 나온다.

그중 압권은 원로원에서 자기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스토아 철학자 아그리피누스의 일화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는 예정된 시간에 운동을 하러 간다. 운동을 마친 뒤 추방형이 선고됐다는 말을 듣고서 그가 뱉은 말은 대략 이렇다. “그렇다면 식사 장소만 바꾸면 되겠군.” 철학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큰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오늘 해야 할 일까지 모두 무너뜨리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이보다 더 유쾌하게 보여주기도 어렵다.

에픽테토스는 독자에게 늘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른다. 감옥에 갇힐 수는 있다. 다리는 묶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서까지 감옥 생활을 미리 시작해야 하겠는가? 그는 자신의 선택의지는 제우스조차 꺾을 수 없다고 밀어붙인다.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왜 황제와 정치가와 군인들에게까지 오래 읽혔는지 조금씩 이해된다. 위로를 잘해서가 아니다. 핑계를 아주 잘 끊어내기 때문이다.

 

 

황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박수갈채였다

― 불안은 ‘잘하고 싶다’에서보다 ‘좋게 보이고 싶다’에서 커진다

 

에픽테토스에게는 놀랄 만큼 현대적인 장면이 있다. 한 키타라 연주자는 혼자 있을 때는 전혀 떨지 않는다. 연주 실력도 충분하다. 그런데 극장 무대에만 올라가면 불안해진다. 에픽테토스는 이유를 정확히 집어낸다. 그는 연주를 잘하고 싶은 데서 멈추지 않고 청중에게 좋은 평가까지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연주는 자기 몫이지만 박수는 남의 몫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움켜쥐려는 순간 불안이 시작된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2천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해진다. 우리는 발표를 잘하고 싶은 것과 “다들 나를 유능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자주 한 덩어리로 만든다. 일을 잘하는 것과 상사의 인정, 글을 잘 쓰는 것과 독자의 반응, 사랑하는 것과 상대가 반드시 나를 사랑해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다 남의 평가가 기대와 어긋나는 순간, 자신이 통째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담화록』 제4권의 한 장면은 이 문제를 한층 더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군인 트라소니데스는 “전쟁터에서는 어느 적도 나를 노예로 만들지 못했건만” 사랑하는 한 여자 때문에 완전히 노예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전쟁에서는 살아남았는데 상대의 작은 마음 하나에는 속수무책이다. 에픽테토스는 여기서 꽤 짓궂게 묻는다. 욕망과 두려움에 끌려다니면서 어떻게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부분이 계속 등장해서다. 자유를 말하면서도 추상적인 자유‘론’으로 달아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박수에 목을 매고 있는가?”, “무엇을 얻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는가?” 하고 아주 구체적으로 들이닥친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고대 로마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우스운 집착을 구경하고 있는 독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스토아 철학 전체를 완벽히 소화한 저자의 인생을

한 조각씩 내 삶에 녹여내는 일

 

에픽테토스를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좋은’ 문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관한 판단이다.” “네게 주어진 배역을 훌륭히 연기하는 것은 네 몫이다.” “자유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다.” 한두 문장만 떼어놓아도 가히 기막힌 명언 카드가 된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대로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계속 나온다.

그런데 정작 에픽테토스 자신은 그런 독서를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철학 이론을 늘어놓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했다. 아주 재미있는 비유도 남겼다. 양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풀을 먹었는지 풀을 토해내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을 소화해 양털과 젖으로 내놓는다. 철학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스토아 철학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행동에서 무엇으로 바뀌었는지를 보라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두려움 없는 삶에 대하여』는 흔한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책’과 갈라진다. 에픽테토스는 좋은 기분을 선물하기보다 반응하는 습관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화를 한 번 더 내면 화내는 습관에 땔감을 더한 것이고, 원칙을 한 번 지켜내면 다음번에도 지킬 힘을 조금 더 키운 것이다. 그러니 철학 공부의 단위는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가 아니라 ‘이번 한 번을 어떻게 행동했는가’가 된다.

이런 이유로 이 624쪽짜리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정복해야 할 거대한 산처럼 볼 필요는 없다. 어떤 날에는 불안에 관한 장을, 어떤 날에는 우정이나 질병에 관한 장을, 또 어떤 날에는 『편람』의 짧은 한 장을 펼쳐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읽은 문장을 멋있게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문장이 필요한 순간에, 어제와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것.

철학은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아마 에픽테토스는 방그레 웃을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평생 통찰이 모두 담긴

단 한 권의 책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대개 짧고 강렬한 문장에 끌린다.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관한 판단이다.” 이런 문장은 한 줄만으로도 오래 남는다. 문제는 너무 잘 남는다는 데 있다. 몇 문장만 기억하고 나면 에픽테토스를 다 읽은 듯한 착각도 생긴다.

그러나 『편람』은 말 그대로 손 가까이에 두고 꺼내 보기 위한 압축본이다. 그 문장이 어떤 질문에서 나왔고, 어떤 반론과 씨름했고, 어떤 인간을 앞에 두고 던져졌는지를 보려면 『담화록』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불안해하는 음악가가 있고, 황제 앞에서 작아지는 관리가 있고, 사랑 때문에 자유를 잃은 군인이 있고, 병들고 늙고 실패하고 화내는 평범한 인간들이 있다.

이 책은 『담화록』 제1~4권부터 『편람』, 흩어져 전해진 『단편』까지 오늘날 만날 수 있는 에픽테토스의 목소리를 한 권에 모았다. 그래서 좋은 문장만 골라 건네는 책이라기보다, 그 문장을 낳은 생각의 전체를 건네는 책에 가깝다.

그렇다고 624쪽짜리 고전을 독자 혼자 헤쳐 나가게 두지도 않았다. 낯선 인물과 역사, 신화와 개념 앞에서는 439개의 각주가 길을 열고, 약 50쪽의 특별 해설은 ‘인상’과 ‘선택의지’처럼 에픽테토스를 제대로 읽기 위해 꼭 필요한 열쇠를 다시 손에 쥐여준다. 전체를 12개의 주제부로 나눈 것도 같은 이유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다음부터는 삶의 형편에 따라 필요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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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대지성
등록일
2026.10.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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