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21세기 팬데믹을 비춘 20세기 카뮈의 예언적 작품
종교도 이성도 힘을 잃은 절망의 시대,
희망을 향한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카뮈 문체 특유의 리듬과 뉘앙스를 충실히 살린 번역
뭉크부터 클림트까지 삶과 죽음을 다룬 명화 15점 수록
★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 프랑스어판 500만 부 판매, 전 세계 약 50개 언어 번역 출간
★ “지금도 위대하지만 앞으로 더 위대해질 책” - 루이 기유, 소설가
1947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니다. 동시대인들에게는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21세기에는 코로나19의 시대적 상황을 예언한 작품으로 사랑받으며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카뮈의 철학 사상 중 ‘반항’ 계열을 대표하는 이 소설은 속수무책으로 닥쳐오는 재앙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고 있다. 의사 리외와 기자 랑베르, 시청 직원 그랑, 묘한 인물 타루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또 같이 페스트와 맞서 싸우며, 오늘날 우리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카뮈의 문체를 생생하게 되살린 번역과 뭉크와 클림트 등의 명화를 함께 수록해 소설의 깊이를 더했다. 본문의 이해를 돕는 다채로운 그림과 특별한 애정을 담아 집필한 역자의 상세한 해설을 통해 독자는 작품의 가치를 한층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해제·유기환
작가 연보
지은이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1913년 11월 7일, 알제리 소도시 몽도비에 살던 프랑스 혈통의 포도 농장 노동자 뤼시엥 오귀스트 카뮈와 스페인 혈통의 하녀 카트린 생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한 달 만에 전사하고, 어머니가 홀로 카뮈를 키웠다.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를 각별히 총애한 초등학교 담임교사 루이 제르맹이 추천해 장학생으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은사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1934년 공산당에 들어갔으나 이내 당의 명령에 반발하다 제명됐다.
1938년에는 신문사 『알제 레퓌블리캥』에 들어가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파리 수아르』를 거쳐, 레지스탕스 신문사 『콩바』의 편집장 자리를 끝으로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작가 생활에 매진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요약되며, 각각의 주제는 에세이, 소설, 희곡으로 형상화된다. 부조리 계열 작품으로는 소설 『이방인』,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오해』가 있고, 반항 계열 작품으로는 소설 『페스트』, 에세이 『반항인』, 희곡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이 있다. 사랑 계열 작품으로는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소설 『최초의 인간』이 있다.
1947년에 출판된 소설 『페스트』는 카뮈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작품이다. 출간 석 달 만에 약 10만 부를 찍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가,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여 다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삶에 대한 최선의 방책이 자살이나 종교가 아니라 반항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1957년에 마흔네 살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만, 3년 후 1960년 1월 4일에 친구 미셸 갈리마르의 차에 동승했다가 파리 근교 빌블뱅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옮긴이 ∥ 유기환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교에서 ‘노동소설의 미학’ 연구로 불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학부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한 후 명예교수로 활
동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 『조르주 바타이유』, 『노동소설, 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 『에밀 졸라』,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공저) 등을 썼고, 현대지성 클래식 『이방인』을 비롯하여 바르트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 바타유의 소설 선집 『마담 에드와르다 / 나의 어머니 / 시체』,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실험소설 외』, 『목로주점』, 『돈』, 『패주』, 졸라 단편 선집 『방앗간 공격』, 외젠 다비의 『북 호텔』, 그레마스/퐁타뉴의 『정념의 기호학』(공역) 등을 번역했다.
며칠 사이에 상황이 심각해졌다. 출몰하는 쥐의 수도 점점 많아졌고, 수거량도 매일 아침 늘어났다. 나흘째가 되자, 쥐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와 죽기 시작했다. 후미진 곳, 지하실, 지하 창고, 하수구에서 쥐들이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올라왔고, 햇살 속에서 바르르 떨며 제자리를 맴돌다가 사람들 곁에서 죽었다. 밤이면, 복도나 골목에서 죽어가는 쥐들이 내지르는 가느다란 비명이 들렸다. 아침이면, 뾰족한 주둥이에 작은 꽃 같은 피를 묻힌 쥐들이 변두리 배수로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몇몇 놈은 퉁퉁 불어 썩어 있었고, 몇몇 놈은 수염을 세운 채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제1부, 28쪽
진균성 종양으로 뒤덮인 환자의 입에서 조각난 말들이 새어 나왔다. 그는 “쥐야, 쥐!”라고 말했다. 얼굴이 푸르스름해진 그는 입술에 핏기가 없었고, 눈꺼풀은 납처럼 무거웠으며, 호흡도 끊어질 듯 짧고 불규칙했다. 림프샘 통증으로 미치도록 괴로워하면서 마치 간이침대를 온몸에 뒤집어쓰려는 듯 아니면 땅속에서 무엇인가가 쉼 없이 그를 부르는 듯 간이침대 깊숙이 몸을 옹크린 문지기는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린 채 질식 상태에 이르렀다. 그의 아내가 울고 있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건가요, 선생님?”
“사망하셨습니다.” 리외가 말했다. -제1부, 36쪽
리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동료 의사 카스텔이 그를 만나러 왔다.
“당연히.” 카스텔이 말했다. “당신도 이게 뭔지 알고 있지요?”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 알고 있소. 분석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는 중국에서 일한 적도 있고, 20여 년 전에 파리에서 비슷한 사례를 본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당시에는 감히 병명을 말하지 못했소. 여론이란 고약한 것이거든…. 특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 돼요. 이미 어떤 동료 의사가 말했잖소. ‘말도 안 돼, 서양에서 그게 사라졌다는 건 모두가 알아요.’ 그럼, 모두가 알고 있지, 죽은 환자들만 빼고는…. 자, 리외, 당신도 이게 뭔지 나만큼 잘 알잖소.”
리외는 곰곰이 생각했다. 진료실 창문을 통해 저 멀리 만灣의 끝자
락에 있는 절벽 바위 등성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아직 푸르기는 했
으나 오후가 저물어감에 따라 점점 광채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요, 카스텔.” 리외가 말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확실히 페스트인 것 같습니다.” -제1부, 52쪽
“저의 강론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진리로 이끌고자 하며,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합니다. 충고나 우정의 손길이 여러분을 선으로 이끌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오늘날 진리는 하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여러분을 그곳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페스트의 붉은 창입니다. 형제 여러분, 만물에 선과 악, 분노와 연민, 페스트와 구원을 깃들게 한 하느님의 자비가 마침내 발현되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여러분을 죽이는 바로 이 재앙이 여러분을 고양하고, 여러분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부, 123쪽
서술자로서는 시민보건대에 생기를 불어넣은 조용한 미덕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이 리외나 타루 이상으로 그랑이라고 평가한다. 그랑은 타고난 선의로 주저 없이 그 일을 맡겠다고 했다. 그는 소소한 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여타의 업무를 맡기에는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했다. 그는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리외가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장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뭘. 페스트가 발생했으니 우리를 지켜야죠, 그렇잖아요. 만사가 이렇게 간단하면 좋을 텐데!” -제2부, 167쪽
랑베르는 깊이 생각해봤는데 여전히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 떠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 되리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아내를 사랑하기도 힘들 것이었다. 그러나 리외가 앉은 채로 몸을 세우며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고, 행복을 택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랑베르가 말했다. “하지만 혼자서만 행복한 건 부끄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제4부, 249쪽
도시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을 들으면서, 리외는 이 환희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저기 기쁨에 젖은 군중은 모르고 있으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 페스트균은 수십 년 동안 가구와 내의에 잠복할 수 있다는 사실, 페스트균은 방,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서류 더미에서 끈질기게 기다린다는 사실 그리고 아마도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죽음의 숙주인 쥐들을 깨워 행복한 도시로 보낼 날이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제5부, 367쪽
카뮈가 가장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소설이자,
시대를 초월한 공감과 통찰을 담은 예언적 작품
2019년 겨울,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알베르 카뮈의 대표 장편소설 『페스트』가 다시금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알제리 오랑에서 발발한 페스트 사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겪은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194X년, 평범한 해변 도시 오랑에서 죽은 쥐들이 발견된다. 처음에는 사소한 사건처럼 보였지만, 곧 페스트의 확산이 드러나고 도시는 철저히 봉쇄된다.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격리, 죽음, 물자 부족, 사랑하는 이들과의 생이별을 겪으며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냉철하면서도 인간적인 의사 리외,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기자 랑베르, 선의를 실천하는 타루, 신의 뜻을 고민하는 파늘루 신부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마주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페스트에 저항한다.
『페스트』는 출간 즉시 큰 성공을 거두며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출간 석 달 만에 약 10만 부가 판매되었다. 이후 전 세계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며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인 소설 『페스트』를 그토록 훌륭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나에서 우리로, 부조리에서 저항으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1913년에 태어나 1960년에 생을 마감한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나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냈다. 카뮈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비극과 부조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카뮈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라는 세 주제로 압축되는데, 소설 『페스트』는 그중에서도 반항 계열을 대표한다.
‘페스트’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를 상징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과 고립, 이별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림으로써 공포와 절망을 느끼지만, 점차 저마다의 방식으로 페스트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특히 두드러지는 인물은 이방인이었던 신문기자 랑베르다. 페스트 발발 초기에 행복을 찾아 도시를 떠나려던 랑베르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결국 도시에 남아 페스트와 맞서 싸우기로 한다. 카뮈는 그의 대사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혼자서만 행복한 건 부끄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249쪽)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연대하여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것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묻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의 활약으로 결국 페스트는 잠잠해지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궁극적인 승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카뮈는 이렇게 경고한다.
“도시에서 환희의 외침이 들려올 때, 리외는 이 기쁨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음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페스트균은 가구와 내의 속에서 수십 년을 잠복하며, 언젠가 다시 행복한 도시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367쪽)
카뮈의 이 예언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극우 정치의 부상으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제 카뮈의 물음에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이 부조리한 시대, 우리 눈앞에 닥친 페스트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것인가?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번역
뭉크부터 클림트까지 명화와 함께 읽는 『페스트』
현대지성 클래식 63번째 책으로 출간되는 『페스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학부의 명예교수인 유기환 교수의 번역으로 선보인다. 『이방인』과 『반항인』 번역으로 독자들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은 유기환 교수는 이번에도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번역을 선보인다. 접속사 하나까지 치열하게 고민한 그의 번역은 『페스트』 속 인물들의 고뇌와 캐릭터를 더욱 선명하게 되살려낸다.
이번 판본에는 『페스트』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명화들이 함께 수록되었다. 에드바르 뭉크,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 등 삶과 죽음을 다룬 화가들의 작품이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페스트』의 철학적 메시지를 한층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새롭게 선보일 이 책을 통해 인간 존재에 관해 카뮈가 던지는 질문에 함께 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