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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완역본 출간!
“이 책을 읽지 않고 로마사를 말할 수 없다.” _김덕수(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군주론』 마키아벨리 추천 도서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고전 총서 수록 도서
『리비우스 로마사』는 2000년간 가장 정통한 로마 이야기로 인정받는 책으로, 원서 21-30권을 담은 『리비우스 로마사Ⅲ』에서는 한니발 전쟁기를 다룬다. 한니발은 카르타고 군과 코끼리들을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넘어 이동시켜 이탈리아를 침공해왔다. 한니발은 개전 초기에 티키누스, 트레비아, 트라시메네 호수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기원전 216년 8월 2일 아풀리아의 칸나이에서 단 하루 만에 5만 명 이상의 로마인을 몰살하는 대승을 거두자 로마인들의 충격은 공포로 바뀌었다. 로마 역사상 최강의 적수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령관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한니발 앞에 숙명의 라이벌 스키피오가 등장한다. 스키피오는 어떻게 한니발을 무찌르고 로마의 영웅이 될 수 있었는지 3권에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자세하게 만나 보자.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를 집필했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이 불멸의 고전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이러한 문장과 어휘의 특성으로 『리비우스 로마사』는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리비우스 로마사』는 분량이 방대한 만큼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과 감동이 가득하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는 세계 교양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21권 한니발의 등장, 알프스 횡단
제22권 트라시메네 패배, 칸나이 대참패
제23권 카푸아·카실리눔의 배반, 북부 이탈리아에서의 패배
제24권 시라쿠사의 정권 교체, 필리포스 왕과의 전쟁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
제25권 타렌툼과 루카니아의 배반, 시라쿠사 재장악
제26권 카푸아 탈환, 아이톨리아와의 동맹 스키피오의 뉴카르타고 점령
제27권 로마의 타렌툼 탈환, 메타우루스의 승리
제28권 스키피오의 스페인 정복
제29권 로크리에서의 악행, 스키피오의 아프리카 공격
제30권 아프리카에서 카르타고와의 전쟁과 승리
연대기
작품 해설 | 이종인
지은이 ∥ 티투스 리비우스 (Titus Livius Patavinus, 기원전 59~기원후 17)
살루스티우스(Gaius Sallustius Crispus),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와 함께 ‘로마의 위대한 3대 역사가’로 손꼽히는 리비우스는 오늘날 파두아로 알려진 이탈리아 북부의 파타비움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대의 혼란 가운데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기원전 49년에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의 내전이 있었고, 기원전 44년에는 카이사르가 암살되었으며, 그 뒤 기원전 42년부터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리비우스는 그리스에서 공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리비우스는 그리스로 가지 못한 대신 로마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해 정계에 입문하는 정상적인 길도 막혔다. 그래서 리비우스는 정부의 관직을 맡은 적도 없고, 원로원 의원으로 선출된 적도 없으며, 군 장교가 되지도 못했다. 정치적 명성을 쌓을 수 있는 길이 전부 막혔지만, 대신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그는 로마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요 문인이며 정치가였던 키케로를 사숙하면서 수사학과 철학에 심취했고,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을 바탕으로 문필 생활에만 전념한다.
리비우스는 그의 필생의 역작이 될 『로마사』를 기원전 30년경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원전 25년경 가장 먼저 『로마사』(Ab Urbe Condita Libri, 약칭 Ab Urbe Condita) 첫 1~5권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발간 즉시 높은 반응과 인기를 끌어 그 이전에 저술된 로마 역사서는 모두 빛이 바랬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리비우스를 가리켜 “고대의 가장 웅변적인 저술가”라고 찬양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는 그의 문체를 가리켜 “크림 빛이 도는 풍요로움”이라고 평했고,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그 문장이 평담하면서도 유원하다”고 극찬하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Herodotos)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사가”라고 평가했다. 이는 『로마사』의 가치와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평가들이다.
리비우스는 『로마사』를 10권씩 한 단위로 묶어 14단위(140권)까지 썼고, 생애 마지막에 141~142권까지 쓰고서 종결점이 되는 150권까지는 마치지 못한 채, 기원후 17년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 특히 서양의 고대와 중세에 대한 역사서를 많이 번역했다.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 『살면서 마주한 고전』등을 집필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리비우스 로마사』,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중세의 가을』, 『마인드 헌터』, 『유한계급론』 등이 있다.
신들의 행동은 승리와 함께하기에, 누가 협정을 어겼는지를 따지는 전문적인 문제는 전쟁의 승패로 결정됩니다. 마치 공정한 판사의 판결처럼 정당한 쪽이 승자가 됩니다. 한니발이 지금 군대를 움직이고 있는 건 로마가 아니라 카르타고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며, 그가 파성퇴로 두드리는 건 결국에는 우리 도시의 성벽이 될 겁니다. 아아, 내가 예견하는 바가 틀렸으면 좋으련만! 사군툼의 폐허는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고, 우리가 시작한 사군툼과의 전쟁 때문에 우리는 결국 로마와도 싸워야 할 것입니다. _26쪽
“제군, 가장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조언을 따를 준비가 된 사람이고, 가장 못난 사람은 어느 쪽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나는 이 말을 자주 들었다. 아아, 우리는 가장 훌륭한 첫 번째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두 번째 사람이 되도록 하자. 지휘를 배우는 첫 단계로서 현인을 따르기로 하자. 우리는 반드시 파비우스와 군대를 합쳐야 한다. 우리가 그의 막사로 군기를 들고 갈 때 나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것이다. 그의 드높은 지위와 그가 우리에게 베푼 도움을 생각하면 그런 호칭을 쓰는 게 마땅하다. 제군, 이제 칼로 우리를 보호한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경의를 표시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감사를 표시할 줄 아는 단 한 가지 훌륭한 재능만은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_164쪽
“파울루스, 이 전술이야말로 유일한 안전책이네. 자네가 일을 진행하는 걸 어렵고 위험하게 만드는 건 적이 아니라 자네 동포일세. 자네 병사들이 원하는 건 바로 한니발이 그토록 바라는 것일세. 바로가 바라는 대로 하면 한니발의 손에 놀아나게 되는 것이야. 자네는 이제 두 명의 장군을 상대해야 할 것이네. 하지만 둘을 상대로 굳건하게 버텨야 하네. 자네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네를 헐뜯으려는 자들의 말을 무시해야 하고, 자네 동료가 찾는 헛된 영광에 동요되지 말아야 하고, 바로가 자네에게 씌우려고 하는 거짓된 불명예에 흔들리면 안 되네.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진실은 거의 죽어 버린 것 같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네. 진정한 영광은 영광을 경멸하는 자의 것이 될 것이야. 자네의 신중함을 비겁함이라고 하고, 자네의 지혜를 나태함이라고 하고, 자네의 지휘 능력을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게나. 어리석은 친구에게서 칭송을 받는 것보다 현명한 적이 자네를 두려워하는 게 더 나은 일이니까. 한니발은 무모한 적은 경멸할 것이나, 신중한 적은 두려워할 거야.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닐세. 그저 내가 바라는 건 자네의 행동이 모든 위험을 피하여 합리적인 방법을 따르라는 것이야. 전쟁의 수행은 늘 자네가 통제해야 돼. 칼을 치워놓거나 경계를 푸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네. 적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해. 그렇지만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반드시 잡아야 해. 천천히 행동하게. 그래야 모든 게 분명하고 확실해질 거야. 성급함은 늘 부주의하고 맹목적인 것이지.” _181쪽
그러는 사이 승리에 도취한 한니발은 대승을 축하하는 장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장교들은 그에게 남은 낮과 밤에 휴식을 취할 것을 권했고, 더불어 지친 휘하 장병들도 휴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기병대장 마하르발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니발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이 전투의 진정한 중요성을 알고 싶으시다면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우리 군은 닷새면 카피톨리움에서 의기양양하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먼저 기병들과 함께 로마로 가겠습니다. 로마 인들은 우리가 로마의 성문 앞에 나타난 뒤에야 우리가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사령관님께서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한니발에게 이 말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희망처럼 들렸고,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고려해 볼 수 있는 계획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마하르발에게 대답했다. “기병대장, 자네의 열의에 감사하네. 하지만 제안한 계획을 숙고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네.” 그러자 마하르발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께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은 틀리지 않나 봅니다. 사령관님은 싸워 이기는 법은 알지만, 승리를 활용하는 법은 알지 못하는군요.”
그날 한니발의 지체가 로마와 제국을 구했다는 건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이다. _198쪽
학살을 마친 로마 군은 약탈에 나섰다. 3만 명의 노예가 붙잡혔고, 막대한 양의 세공된 은과 은화, 3,080파운드의 황금, 시라쿠사에 못지않은 많은 조각상과 그림을 전리품으로 탈취했다. 하지만 이런 포상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파비우스는 마르켈루스보다 더 고결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타렌툼엔 신들을 전사(戰士)의 모습으로 내세운 거대한 조각상들이 있었는데, 각기 특색 있는 옷과 자세를 보였다. 한 서기가 파비우스에게 이 조각상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그는, 신들이 타렌툼 인들에게 분노했다는 걸 명백히 보여주기 위해 조각상을 그대로 놔두라고 지시했다. 이어 도시와 요새를 나누는 장벽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_617쪽
현장에서 작전을 펼치면 지금처럼 먼 곳에서 모호하게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자세히 알게 됩니다. 자기 몫을 옳게 해내는 지휘관은 예기치 못한 행운을 절대 놓치지 않고 그것을 훌륭하게 활용합니다. 파비우스, 저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한니발을 상대할 겁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여기 붙잡아두지 못할 겁니다. 그는 저를 따라오게 될 테니까요. 저는 그를 카르타고 땅에서 싸우게 강제할 것이고, 저의 전리품은 카르타고가 될 것입니다. 다 무너져 가는 몇 안 되는 브루티움 요새들이 아니라 말입니다. 제가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에 병력을 내리고 카르타고로 이동시키는 동안에 우리 이탈리아가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_772쪽
사람의 성공이 더 커질수록 그것이 더 지속된다고 믿기가 힘든 법이오. 지금은 그대가 승리할 시간이고, 우리는 모든 게 암울한 상황이오. 그대가 허락한다면 평화는 그대에게 명예와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오. 비록 평화를 요청하는 우리에겐 아무런 명예도 없고 불가피한 짐만 남을 뿐이지만 말이오. 확실한 평화는 불확실한 승리를 향한 희망보다 더욱 낫고 안전하오. 하나는 그대의 손에 달렸고, 다른 하나는 신의 손에 달렸소. 오랜 세월 공을 들여온 걸 한 시간만의 결정으로 위태롭게 하지 마시오. 그대의 전력 외에도 우리 둘이 공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힘과 전운을 염두에 두시오. 그대와 나는 모두 칼을 가지고 있고, 장병들과 함께하고 있소. 전쟁만큼 사람의 희망에 응답하는 결과를 내어놓는 게 어디 있겠소? 그대가 승리한다면 지금 평화를 허락하여 얻을 수 있는 만큼의 영광을 더하지 못할 것이고, 좌절하게 된다면 영광을 잃어버릴 것이오. 한 시간의 운으로 그대가 얻은 명예와 얻고자 하는 명예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평화 협정을 하면 모든 것이 그대의 것이오. 거절하면 신들께서 그대에게 주시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소. 예전 이곳 아프리카로 온 레굴루스는 승리한 뒤 우리 선조들이 평화를 요청했을 때 그것을 허락했더라면 성공으로 보답 받을 수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는 성공에 한도를 두지 않았고, 운이 그에게서 달아나자 그는 고삐를 당길 수 없었소. 높이 날아오른 만큼 추락하는 것도 그만큼 수치스러웠지. _908쪽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 동안 서양 교양인의
필독서로 꼽혀온 불멸의 고전
“로마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다른 누구보다도 리비우스에게 기인한다.”
- R. S. 콘웨이
시중에 로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여러 권 있지만, 이 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빠져 있었다. 바로 『리비우스 로마사』이다. 이 책은 로마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저작물이다. 당대 역사가가 썼다는 점과 로마에 대해 가장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와 관련된 책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리비우스가 당초 150권으로 기획했으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142권까지만 쓰고 생을 마감했다. 아쉽게도 대부분이 유실되고,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1~10권과 21~45권, 총 35권으로, 현대지성에서는 이 35권을 전4권에 담아 완역하였다. 『리비우스 로마사』 시리즈는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아스(Aeneas)가 이탈리아에 정착한 이야기(기원전 753년)에서 시작하여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로마 건국을 지나,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전쟁기와 제2-3차 마케도니아 전쟁(기원전 167년)까지 총 586년의 로마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로마의 리비우스”
로마 역사문학의 정점
『리비우스 로마사』는 출간됐을 때부터 큰 인기를 끌어 당대에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플루타르코스 등 로마 제정기의 많은 작가들이 이 책을 출처로 삼아 역사서를 남겼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라는 책을 썼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이 불멸의 고전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비우스 로마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 가치와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문체가 큰 몫을 차지한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문학평론가이자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는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를 가리켜 “크림 빛이 도는 풍요로움”이라고 평했고,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그 문장이 평담하면서도 유원하다”고 극찬했다. 또한 그는 리비우스를 가리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사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에게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한니발 전쟁기
포에니는 카르타고를 가리키는 로마식 명칭이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에 매진하는 동안에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국가 카르타고와 전쟁을 벌일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로마가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직접 지중해로 진출하게 되자 두 강대국 사이의 충돌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원서 중 제1차 포에니 전쟁 부분은 인멸되어 전해지지 않으므로 제2차 포에니 전쟁, 즉 한니발 전쟁기로 건너뛰게 되는데, 이것이 한글판 제3권의 내용이다.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던 카르타고 장군 하밀카르는 반드시 로마에 복수할 것을 다짐했으며, 그의 아들 한니발 대에 이르러 제2차 포에니 전쟁으로 나타났다.
전쟁의 발단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스페인의 로마 동맹시인 사군툼을 포위 공격한 것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인들은 동부 스페인의 공동체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그곳에 진출한 카르타고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로마는 기원전 226년 에브로 강 이남의 지역(카르타고가 지배하는 지역)은 간섭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곧 그것을 위반했다. 당연히 카르타고는 로마의 이런 움직임에 반발했다. 카르타고인들은 스페인의 광업과 농업 자원에 투자한 자국의 중요한 상업적 이해사항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크게 우려했다. 이 두 번째 전쟁은 첫 번째보다 더 큰 부담을 로마인들에게 안겼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이번에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로마는 이 때 한니발이라는 뛰어난 군사적 천재가 카르타고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 한니발은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모든 사건들을 회전시키는 중심축 같은 인물이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 군과 코끼리들을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넘어 이동시켜 이탈리아를 침공해왔다. 한니발은 개전 초기에 티키누스, 트레비아, 트라시메네 호수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기원전 216년 8월 2일 아풀리아의 칸나이에서 단 하루 만에 5만 명 이상의 로마인을 몰살하는 대승을 거두자 로마인들의 충격은 공포로 바뀌었다. 트라시메네 호수에서 승리를 거둔 후 한니발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탈리아인들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이탈리아인을 대리하여 로마와 싸우러 왔다.” 한니발의 전략은 로마와 동맹을 맺은 이탈리아 도시들 내에서 광범위한 반란을 촉발하여 로마를 포위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한니발은 포에니 전쟁 중이던 215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와 동맹을 맺었다. 그렇게 되자 로마는 동시에 그리스에서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한니발은 15년 동안 이탈리아의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로마의 영토를 파괴하고, 수도 자체를 위협하면서 로마인들의 삶을 한없이 비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니발에게는 아주 참담하게도 대부분의 이탈리아는 카르타고 편에 붙지 않고 로마에 충성을 바쳤다. 결국 한니발은 기원전 203년에 게릴라 전술을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했다. 그 당시 로마의 스키피오가 스페인 지역을 평정하고 카르타고를 정복하겠다고 나서면서 고국 카르타고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야전에서 34년을 보내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한니발은 202년 스키피오와 맞선 자마 전투에서 패배했다.
폴리비오스는 포에니 전쟁을 가리켜 “그 오랜 기간, 격렬함, 작전의 규모 등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한니발 전쟁기는 고대에 벌어진 세계대전이다. 전쟁은 단순히 이탈리아 본토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스페인, 시칠리아, 사르데냐, 카르타고, 아프리카 북부에서 벌어졌고, 또 그리스의 필리포스는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었고, 다른 소아시아 국가들은 그 전쟁의 판세를 지켜보면서 어느 쪽에 붙을까 그들 유리한 쪽으로 저울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