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자문, 이수정 교수 추천!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죽은 이의 신원, 사소한 습관, 다잉 메시지까지…
뼈에 새겨진 기억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미국인 의사 프리저브드 포터는 노예 한 명이 1798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골을 연구용으로 쓰려고 남겨두었다. 훗날 포터의 후손이 유골을 박물관에 기증했고, 박물관에서는 해골에 적힌 대로 표본에 ‘래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부터 60여 년 뒤인 1999년에 뼈를 분석해보니 래리의 진짜 이름은 ‘포춘’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포춘의 손발 뼈에 남은 흔적은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인대를 다쳤다는 증거였다. 또한 그는 사고를 당해 익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실은 넘어져 경추가 부러진 것이 실제 사인이었다고 밝혀졌다.
이렇듯 뼈를 분석해서 고인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사인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법의인류학자가 하는 일이다. 그들은 고고학, 인류학, 법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단서와 흔적을 찾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 조사 결과는 고인의 신원을 밝히는 자료가 되며 법정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법의인류학자는 억울하게 잊히는 죽음이 없도록 지금도 사건 현장에서 묵묵히 진상을 밝혀나가고 있다.
책의 제목인 ‘뼈의 방’은 기증받은 유골을 모아둔 법의인류학자의 특별한 공간을 말한다. 뼈의 방에 보관된 수백, 수천 개의 상자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신진 법의인류학자로 주목받는 저자는 뼈 하나하나에 새겨진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았다. 역사 속 미제 사건, 세계적으로 논란거리가 된 사건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쓸쓸히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려준다.
이 책은 단지 뼈에 얽힌 사건의 전말을 서술한 기록이 아니다. 저자는 뼈를 통해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고인이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한때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치열한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죽음과 삶 그리고 인간의 소중한 권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들어가는 말 | 법의인류학자의 특별한 공간
1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다
1장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
2장 뼈 대신 말하는 사람
3장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2부 뼈는 삶을 이야기한다
1장 뼈가 녹아내린 노동자들
2장 몸에 남는 삶의 증거들
3장 바다에 가라앉은 사람들
4장 눌린 뼈, 튀어나온 뼈
3부 죽음이 남긴 메시지
1장 뼈에 대한 예의
2장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것
3장 과학의 이름으로 강요당한 침묵
4장 외롭게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5장 메멘토 모리, 우리는 결국 뼈가 된다
맺는 말 | 죽음을 마주하는 법
감사의 말
참고 자료
지은이 ∥ 리옌첸(李衍蒨)
현장을 뛰어다니며 유골과 시체를 마주하고 그들의 신원을 찾는 일에 앞장서는 신진 법의인류학자다. 미국 오리건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마이애미 시체안치소와 관련 기관에서 인턴 업무를 했다. 방치되어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유골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영국 레스터대학교에서 법의인류학과 법의고고학을 전공했다. 그 기간 동안 동티모르 경찰의 법의인류학자로 일하면서 독립 운동 과정에서 학살당한 무연고 시체의 잔해를 수습했다. 그 외에도 폴란드, 미국, 키프로스,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유해 발굴을 비롯 여러 법의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홍콩의 온라인 뉴스 플랫폼인 《스탠드 뉴스》에 정기적으로 법의학 및 법의인류학과 관련된 글을 기고했으며, 2017년에는 페이스북 페이지 〈The Bone Room(存骨房)〉을 개설하여 영어와 중국어로 세계의 법의인류학 소식을 나누고 있다. 2019년부터는 홍콩 RTHK Radio 1에서 〈법의연구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옮긴이 ∥ 정세경
북경영화대학에서 공부한 뒤 싸이더스 픽처스에서 근무했다. 현재 중국어 출판 기획자 및 번역가로 활동하며 심리학, 철학, 자기계발, 소설, 교양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뇌는 당신이 왜 우울한지 알고 있다』,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인민의 이름으로』 등이 있다.
사막에서 뼈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랜 시간 햇볕을 쬔 탓에 유골이 표백되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이날은 열 달 전쯤 밀수업자를 따라나섰다가 소식이 끊긴 가족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새벽부터 모인 사람들은 ‘사막의 독수리(Aguilas del Desierto)’라 불리는 조직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미국 국경을 넘다가 실종된 사람들을 애타게 찾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든 단체다. 사막에 서식하는 독수리는 시각이 예민해서 먹잇감을 잘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독수리가 사냥을 하듯 실종자들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 p.13~14
진상이 밝혀진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뼈에 남겨진 흔적을 토대로 우리는 망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법의인류학자의 본분은 말할 수 없는 망자를 대신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 p.24
법의인류학자의 마지막 목표 가운데 하나는 죽은 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누구든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든, 심지어 배후에 군대나 정부가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억압받고 착취당한 사람들, 살해된 사람들, 학대를 당하고 연고자도 없이 아무 데나 묻힌 사람들, 집단 무덤에 묻힌 사람들을 위해 더욱 그래야만 한다. - p.35
기록에 따르면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포춘의 자녀들은 다른 곳으로 팔려 갔다고 한다. 박물관은 포춘의 DNA와 동위 원소 분석 기술을 이용해 팔려 간 후손과 그들의 현재 거주지를 추적해나갔다. 포춘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정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도록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법의인류학자들은 뼈를 통해 이름이 없었던 유골에게 잊혔던 신원을 되돌려주었다. 포춘은 세상을 떠난 지 215년 만인 2013년에야 비로소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 p.48
드라마에서는 브레넌 박사가 검시한 유골이 정말 케네디 대통령이 맞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또 다른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과연 실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 조사에는 법의인류학자가 참여했을까? (…)
유골의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생전의 엑스선 사진과 치아 기록을 유골과 비교하는 방법과 전두동 대조법을 자주 사용한다. 학자들이 애용하는 전두동 감정법은 1927년에 시작되었다. ‘이마굴’이라고도 부르는 전두동은 눈썹활에 자리한 두개골 외골과 내골 사이의 공간을 가리킨다. 이 공간은 사람마다 형태가 다르며 대칭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그 덕분에 전두동 엑스선 사진을 비교하면 동일인인지 판별할 수 있다. 심지어는 화장한 유골의 앞이마 엑스선 사진과 비교해도 알아낼 수 있다. - p.67~68
이미 다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종족이 멸절하다시피 한 살상지를 찾아가 보면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유족들은 오로지 한 가지 답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 친척, 친구를 그리워하고 애도하며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게 해줄 이정표를 바라는 것이다. 듣게 될 답이 원하던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생존자들과 유족의 마음에 난 구멍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 p.91
인도에서는 종교적·사회적인 이유로 시체를 갠지스강 같은 곳에 흘려보내 그대로 부패하도록 놔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들이 시체를 물에 흘려보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용도로 아무렇게나 쓰여도 된다는 뜻일까? 과학 지식을 얻는 것이 정말 죽은 사람을 존중하고 그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까? - p.117
유골을 전시하거나 연구하는 것으로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무례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과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사람에 대한 존중과 그 너머의 윤리를 포기해야 할까? 유골이나 인체 표본 전시는 사람들이 인체 구조의 오묘함을 배울 좋은 기회다. 전시회들은 하나같이 언론 매체나 문헌, 각종 조명에 소리 효과까지 동원해서 관람자들을 과거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시회 관람 과정이 죽은 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준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배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 p.148
뼈를 통해 죽음과 삶, 미래를 마주하다
“생명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는 ‘무덤’에 대한 인식이 남들과 달랐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무덤 앞에서 어머니가 남긴 책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무덤은 차갑고 생명력 없는 장소가 아니라 어머니와 감정적으로 교류하면서 지식을 쌓아가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메리 셸리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그저 슬픔으로만 남지 않았다. 죽음을 직시하고 수용함으로써 작가로 성장하는 원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법의인류학자인 저자도 마찬가지다. 인류학, 법의인류학, 법의고고학을 공부하면서 다진 탄탄한 지식에 현장을 뛰어다니며 쌓은 경험이 더해지면서 죽음과 삶을 깊이 사유하게 되었다. 저자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 엄정한 분석을 통해 법정에서 쓰일 증거를 확보하는 일, 고인의 마지막 순간이 어땠는지 듣기 위해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에 답하는 일이 모두 법의인류학자의 의무이자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법의인류학자가 바라본 진실
“뼈는 우리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증인으로,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작고한 법의인류학자 클라이드 콜린스 스노우의 말이다. 법의인류학자는 이미 부패하거나 완전히 뼈만 남은 유해를 분석해서 자연사인지 사고사인지 혹은 자살이나 타살인지 알아낸다. 사인이나 신원을 비롯해 생전의 사소한 습관까지도 뼈만 남아 있다면 예리한 눈으로 판별해낼 수 있다.
기괴한 사망 사건과 공업화가 낳은 중금속 중독, 북서 항로 탐험대의 실종 사건, 케네디 대통령 암살, 타이타닉호 침몰, 페루에서 발견된 외계인 미라…. 저자는 법의인류학자의 관점으로 뼈에 얽힌 역사 속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며 고대인들의 병리 현상, 세계 각지의 장례와 유골 문화 등을 살펴본다. 그리고 사막에 흩어진 유해와 집단 무덤에서 발견된 백골 등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로 방치된 사람들의 존재를 일깨우며 우리가 삶과 죽음의 세계를 색다른 시각으로 통찰하도록 이끈다.
뼈 너머의 사람에 주목하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은 6.25 전쟁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해서 유족에게 알려주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유해를 찾아 신원을 밝혀내는 작업도 이어진다. 그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 집단에게 죽임을 당해 집단 무덤에 묻힌 사람들,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사막에서 죽은 사람들, 강제 노역을 하다가 숨진 사람들 등 억울하게 잊힌 사람들의 신원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안타깝긴 하지만”이라는 구실로 외면당한 희생자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재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미 죽은 사람을 찾아 무엇하냐고,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유족에게는 실종자의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마주하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야만 남은 생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뼈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인의 권리를 뒤늦게나마 찾아주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우리와 후세를 위해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죽은 이들 목소리를 대신 전해주고 그들과 유족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자 오늘도 법의인류학자들은 ‘뼈의 방’을 떠나지 않고 있다.
죽은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야
내 권리도 지킬 수 있다
고작 수백 달러만 주면 사람의 뼈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들이 있다. 대부분 매매가 허가되지 않은 유골들이다. 인도에서는 종교적‧사회적 이유로 시체를 갠지스강 같은 곳에 흘려보내고 부패하도록 놔두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연구용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면서 시체를 몰래 훔쳐 간다. 대중에게 해부학 지식을 알려줄 목적으로 열리는 전시회도 시체의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도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다가 존엄하게 죽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열악한 노동 환경, 정보 격차, 성 불평등 같은 문제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내 몸과 내 삶의 주체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을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다양한 채널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헛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도록 고군분투한다. 불공정한 대우나 핍박을 받았던 사람의 유골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 이것이 저자가 고인을 애도하는 방식이며 뼈와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