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세상에 발 딛고 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다와 저마다의 항해가 있는 거니까
인생의 방향타를 잡지 못해
수없이 흔들리고 불안할 때마다…
기억하세요.
당신만의 바다에서는 마음껏 헤엄치기만 하면 된다고,
어느 길로 가든 자신을 믿고 가면 그게 정답이라고,
결국엔 내 선택이 옳았다고 증명할 힘도 내게 있다고.
뱃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인생에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파도가 불어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뚫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내면이 단단한 사람, 그것이 진정한 뱃사람의 모습 아닐까.
– 본문 중에서
프롤로그
1 바다가 나를 살렸다
뼛속까지 섬집 아기
K-장녀의 방은 없었다
의대 사관학교 상산고에서 뜬금없이 해양대로?
대가리 박아!
수능 망쳤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지옥 같았던 여름방학 해양훈련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첫 항해
토하면서 수업하기
외국에서 연예인 되기
바이킹의 후예와 장보고의 후예
무너졌던 자존감을 세워준 바다
남들 다 하는 건 재미없지!
2 바다의 심장을 만지다
슬기로운 의사 같은 선박 기관사 생활
선박 기관사가 대체 뭐 하는 직업이야?
화장이 뭔가요?
기관실 소음 ASMR
바다 위에선 타이타닉 보지 맙시다
30명 중 29명이 남자인 세상
돈을 모을 수밖에 없는 직업
선박 기관사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
고소공포증에는 금융 치료가 답이지
싱그러운 바닷바람은 개뿔!
상사 옆집으로 퇴근합니다
해기사 버전 《기생충》
3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법
입영열차 타고 떠난 그녀
바다 위에서 연애하는 법
유재석 안 부러운 부캐 부자
태평양 시계는 선장님 마음대로
파도를 넘나드는 주식 열풍
생리, 그 참을 수 없는 불편함
인생 책 『라틴어 수업』
부모님이 배에 오신 날
태풍이 불 때는 말입니다
러닝머신으로 서핑 해봤니?
강제로 아날로그
당연한 것의 소중함
무늬만 선박 기관사, 사실은 잡부
해적이 나타났다!
망망대해에서도 아이돌은 끊을 수 없어
4 바다, 그 심연 속으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비결
바다에서도 코로나는 피할 수 없다
진정한 뱃사람이 되려면
적도를 지나며
미치도록 그리운 스타벅스 커피
인종차별도 막지 못한 기쁨
태평양의 밤하늘
죽은 영혼과의 조우
위대한 롤모델, 여성 최초 기관장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 있었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부록 Tip : 선박 기관사 되는 법
에필로그
지은이∥ 전소현
여객선 승무원도 아니고 어부도 해녀도 아니지만 천생 뱃사람인 건 확실하다. 1년 내내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바다에서 기계가 뿜어내는 먼지와 소음에 둘러싸여 전기와 수도를 만드는 것부터 오수 처리까지 해내야 하는 3등 선박 기관사로 일하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의대 진학을 꿈꾸었지만, 세상에, 이 땅에 이렇게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았던가? 결국, 시원하게 수능을 말아먹고 이름도 생소한 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길로 선박 기관사라는 항로를 발견했고, 바다에 와서야 비로소 내 길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이 책이 당신만의 바다와 당신만의 항로도 찾아주기를. 그럼, All Station Stand By! Bon Voyage!
지은이∥ 이선우
특별한 목표는 없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해서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이었다. 덕분에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첫 수강신청부터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과목 중 듣고 싶은 게 없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어서 남들처럼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그냥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항상 열심히는 살아왔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바다 위에서 차곡차곡 꿈을 이루어가는 소현을 보았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이 책을 기획하고, 소현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면서 그간 품었던 의문들이 서서히 풀렸다. 글은 잊고 있었던 꿈, 진짜 나를 찾아주었다.
왜 소현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지 생각해봤다. 처음엔 단순히 뾰족한 글감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쓰면 쓸수록 마음속 더 깊은 근원으로 내려갔다. 그 속엔 나의 욕망이 있었다. 욕망은 바다에 대한 애정, 지나간 20대에 대한 미련, 못 가본 길에 대한 후회 등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며 얼굴을 드러냈다.
남의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쓰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이 책은 내 이야기가 아니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쓰면서 불안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을 만났다. 인생의 방향타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나를 잡아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았는데 뜻밖에 소현의 모습에서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믿는 자신감이었다. -p.19
타고난 머리만 믿고 게으름 피우는 일도 없었다. 성실함이 최고의 장점이라고 부모님도 인정할 만큼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는 법 없는 모범생이었다. 재능과 노력으로 무장한 소현에게 적수는 없었다. 이름보다 ‘전교 1등’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수학은 가장 자신 있었다.
그러니 수재들의 집합소인 상산고에 원서를 넣은 건 당연했다. 상산고는 대치동에서 세 살부터 사교육에 둘러싸여 준비한 아이들도 족족 떨어진다는 자타공인 최고의 명문이었다. 강남 한복판이 아닌 경기도 외곽 출신에 고액 과외 한 번 받아본 적 없었지만 높은 성적으로 당당하게 상산고에 합격했다. 상산고는 ‘의대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졸업생 대부분이 의대로 진학한다. 부모님은 딸이 벌써 의사라도 된 것처럼 기뻐했다. 자신감이 충만한 소현도 그대로 졸업해 의사가 될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인생이 항상 그렇게 장밋빛일 리는 없었다. 1학년 첫 학기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첫 시험부터 전교 꼴찌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충격이었다. 몇 번이나 성적표를 다시 봤지만 세 자리 수는 그대로였다. -p.33
처음부터 배를 타겠다고 결심하고 대학 생활을 한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배운 전문 지식을 실제로 써먹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는 있었지만 ‘설마 내가 바다로?’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다가 3학년 때 회사 실습을 다녀오면서 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직접 배를 타자 수업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달달 외운 것들이 생명력을 갖추고 살아나기 시작했다. 책으로만 확인했던 이론들이 보란듯 걸어나와 현장에서 기기를 고치는 데 쓰인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전공 서적에 ‘부하가 많이 걸리면 Amp(암페어, 즉 전류치)가 올라간다’는 문장이 있었다. 부하가 뭔지, 암페어가 뭔지도 모른 채 문장을 통째로 외워두긴 했다. 그런데 배에 타서 보니 기계에 문제가 있거나 로드가 많이 걸리면 정말로 암페어 지시값이 평소보다 올라갔다. 기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컨디션이 바뀌었다는 걸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였다. 그런 것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진다는 게 짜릿했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p.84
한번은 상급 기관사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해도 상사가 화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상사의 말은 점점 거칠어졌다. 거의 쌍욕 수준까지 수위가 올라가자 부당하다는 억울함과 함께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잘못 눈물 바람을 했다가는 ‘여자라서 눈물로 다 해결하려고 한다’, ‘이래서 여자 태우면 안 된다’라는 소리가 나올 판이었다.
그건 정말 원치 않는 상황이라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원래 눈물이 많은 스타일이라 최선을 다해 다른 생각을 했다. 딴생각하는 게 너무 티가 났는지 싸가지 없다면서 추가로 더 혼났다. 그래도 그 자리에선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데 성공했다. 물론 화장실로 돌아가 펑펑 울어서 눈이 퉁퉁 붓는 바람에 결국 들통 났지만. -p.118
“내 말이 지금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럼 무슨 뜻인데!!”
그걸로 통화가 끝났다. 또 인터넷이 끊긴 것이다. 해상 기후가 좋지 않아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기까지 그로부터 며칠이나 더 소요됐다. 남자친구의 말이 그럼 무슨 뜻이었는지 영원히 알지 못했다는 이 슬픈 이야기는 사실 배 위에서 연애하는 사람들에겐 늘 있는 일이다.
배를 탄 상태에서 연애하는 건 보통의 장거리 연애보다 훨씬 힘들다. 아무리 장거리 연애라도 다음에 언제 만날지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기사의 경우는 대략적인 하선 날짜도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직원들의 휴가는 회사 내 인력 운용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휴가가 정해졌다가도 연기되거나 취소되기 일쑤다. 심지어 휴가를 나갔는데도 아주 짧게만 쉬고 다시 승선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만남을 기약할 수 없다 보니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고, 기다려달라고 하는 입장에서도 너무 미안해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연락만이라도 가능하면 고충이 좀 덜할 텐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연인이 같은 육지를 밟고 살면서 매일 통화하고 카톡하는 연인처럼 항상 연락이 닿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래도 선배들 말을 들으면 요즘은 정말 좋아진 거라고 한다. 대부분 배에서도 인터넷이 되기 때문이다(간혹 안 되는 배도 있다. 그런 배에서 연애하는 건 과연 어떨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메일이 연인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고 하니 과거 연인들이 바다 위에 수많은 눈물을 뿌렸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p.164
몇 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소말리아 해적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뉴스가 나와서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든다. 2011년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 선원들을 대한민국의 청해부대가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악명 높은 해적의 민낯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짠내 나는 해적이 훨씬 많다. 소소하게 돈 뜯어내고 물건 훔쳐가고. 기름은 물론 얼마나 없이 사는지 소화전에 붙어 있는 연결 호스까지 떼어간다고 한다. 그들 나라에선 그것도 돈이 된다고. 그런 해적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목숨에 위협이 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쫓아오다가 엔진이 꺼져서 바다에 빠지는 건 아닌지 신경을 써줘야 하나 고민이 될 만큼 안쓰럽다. 그런 해적들을 상대로 해적 수당이라는 이름의 돈을 추가로 받는 게 미안할 정도로 무늬만 해적이지만, 그래도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세상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자나 깨나 육지에선 밤길 조심, 바다에선 해적 조심. -p.230
전교 1등에서 전교 꼴찌로,
그 막막함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들
중학생 시절 자기 이름보다 ‘전교 1등’으로 불린 소현. ‘수재 집합소’라는 상산고에 들어가 이제 내 인생도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의사가 되어 보란 듯이 살겠다고 꿈꿨다. 하지만 결과는 첫 시험부터 전교 꼴찌에 가까운 성적. 3년 동안 약까지 먹어가며 공부했지만, 의대는커녕 수능에서도 처절히 실패했다. 그때 아빠가 내민 카드가 ‘한국해양대학교’였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나와서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버텨야 했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떠밀리듯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계속 좌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이 인정해주는 길, 의사 같은 직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좋은 삶도 있다”라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선택이, 그 결심이 인생을 갈랐다. 지금은 태평양을 오가며 LNG를 실어나르는 배 위에서 3등 선박 기관사로 일하고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바람에 흔들거리는 탑브릿지에 올라가 기계를 정비해야 하고, 때로는 막힌 변기 파이프를 뜯어내다가 오물을 뒤집어쓰기도 하지만 하루하루의 삶으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내고 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한 선우도 우등생이었다. 자연스럽게 명문대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남들 다 하는 결혼도 했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그냥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원래 인생이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는 건가? 그때 소현을 만났다. 인생이 고꾸라지는 절망의 터널을 지나 바다 위에서 제 길을 찾아가는 소현을 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이 글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좌절과 아픔 속에서도 자기를 믿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인생의 막다른 길에 있는 독자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갈 것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개뿔!
‘맵단짠’의 향연, 선박 기관사의 승선 라이프
선박 기관사는 항해사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난감한 건 선박 기관사가 뭐냐고 물어볼 때였다. ‘배를 탄다’라고 하면 주변에서는 대부분 고기잡이배를 떠올린다. 배 타는 전문직이라고 하면 항해사만 떠올리는 일도 부지기수다(3년 차가 되면 대기업 부장 정도의 월급을 받는 고연봉 전문직이지만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선박 기관사는 선박의 심장과도 같은 엔진과 각종 기계를 고동치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다. 40도가 넘는 찜통 같은 기계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기계를 청소하고 관리한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멈춰서게 되고 그럼 승선한 사람들의 목숨도 위태롭기 때문에 유지보수와 관리도 매우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바다 위에서 일하다 보면 육지에서 상상도 못할 에피소드도 넘쳐난다. 한번은 심한 태풍에 방에 있던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내린 적도 있었다. 평소에는 흔들림에 대비해 모든 물건이 벨트로 묶여 있는데 그날따라 태풍이 심했는지 새벽에 눈을 뜨니 냉장고가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있었다! 결국 냉장고와 사투를 벌이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건 단연 30명밖에 없는 배에서 혼자 여자로 살면서 겪는 고충이다. 당직 날엔 출근복을 갖춰 입고 잠들거나 쓰레기 검사에서 생리대를 숨기기 위해 온갖 화려한 포장을 하기도 한다. 한 명밖에 안 뽑는 여성 사관 자리인데, 자신이 잘못했다가 내년부터 여성 사관 채용이 끊길까 봐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노력하면서 혼자 화장실에서 눈물 훔친 날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소현은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발 딛고 선 그곳이 어디든
인생은 언제나 오늘부터, 여기서부터
인생이 항상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살아보아도 알 수 있다. 스물다섯 소현도 상산고 시절부터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불평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는 사실도 일찍 깨달았다. 세상은 견디고 버티는 자에게 그만큼의 선물을 되돌려주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낸 날들이 새로운 기회로 돌아옴을 소현은 경험했다.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물길을 몸소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바다가 펼쳐지기도 한다.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열어온 바다가.
바다야말로 삶과 가장 닮아 있는 곳이다. 어디에선 파도가 세차게 불고 어떤 곳은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 그렇게 각기 다른 작은 바다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찬란한 인생의 맛을 소현은 모두 바다에서 배웠다. 잠시 큰 파도를 만났다고, 무풍지대여서 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고 섣불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 구간을 견디어내면 또다시 새로운 길이 펼쳐질 테니까. 그렇기에 소현의 인생도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펼쳐질 그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오늘도 배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기계들과 사투를 벌인다.
“바다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