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한 자폐인이 촘촘히 기록한,
자폐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점
“자신이 경험한 자폐 스펙트럼을
놀랍도록 유머러스하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조우성 변호사_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일부 에피소드 제공
“삶이 반복적으로 무너져 내릴 때,
인생을 긍정하는 지혜를 그에게서 배웠다.”
리단 작가_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저자
만 6세까지 말을 하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던 저자는 지금껏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폐인의 내면세계와 자폐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점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사실 자신이 평생 겪어온(지금도 겪는) 이야기들은 꽤 아프기도 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지만 저자는 많은 에피소드 속에서도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사람은 어떤 한 가지 설명에 가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폐증은 자기 키가 195센티미터라는 것처럼 여러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각이 살아가는 세상은 모두 독특하고 살 만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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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머리말 대신 쓰는 말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
2장 규칙은 어디까지 규칙이지?
3장 없던 병도 만드는 정신과 치료
4장 자폐증이란 무엇인가?
5장 약물 중독 그리고 내가 만난 새로운 세계
6장 친구부터 직장까지, 결국 인간관계가 핵심이다
7장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다
8장 나는 자폐를 잘 모른다
맺음말 대신 쓰는 말
지은이 ∥ 조제프 쇼바네크(Josef Schovanec, 1981~)
1981년 파리 근교에서, 1970년대에 체코에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스퍼거증후군에 걸린 조제프 쇼바네크는 만 6세까지 말을 하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늘 멍청이나 지적장애인 취급을 당했고, 간단한 인사를 하거나 카페에 들어가는 일도 버거워하고 빵을 사는 사소한 일에도 쩔쩔맸다.
우수한 성적으로 바칼로레아(프랑스의 ‘수능’)를 통과하고, 고대 문명에 심취하여 독학으로 10개 언어를 배웠으며(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아마르어, 아제르바이잔어, 에티오피아어, 체코슬로바키아어, 독일어, 핀란드어, 영어), 프랑스 명문대 시앙스 포(Sciences Po, 파리 정치대학) 졸업 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명사들의 담화문을 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붙인 이름(“천재적인 자폐인”)을 거부하고, 오히려 아스퍼거 장애를 지닌 자폐인이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유머러스하고 섬세하게 다룬다. 지하철을 타거나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필요한 어마어마한 준비 과정, 전화벨이 울릴 때 마음을 죄어오는 불안감, 조금이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느끼는 공황 상태, 평범한 친구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한한 어려움, 도서관과 책에 대한 강박적인 열정 등을 시종일관 즐겁게 펼쳐놓는다. 그리고 의사가 잘못 내린 판단 때문에 평생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생을 마감할 뻔했던 황당한 정신치료 과정도 떠올린다.
쇼바네크는 “나는 자폐증과 함께 산다”라고 고백하며, 자폐증은 자기 삶을 망가뜨린 장애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옮긴이 ∥ 이정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낭트 시립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며 프랑스어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인피니티』, 『대멸종이 온다』, 『퀀텀』, 『만화로 배우는 와인의 역사』, 『만화로 보는 성sex의 역사』, 『세상의 모든 수학』, 『나는 니체처럼 살기로 했다』, 『청소년이 정치를 꼭 알아야 하나요』 등이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 『아르센 뤼팽 전집』이 있다.
아마르티아 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에 따라 여러 개의 변화하는 정체성(가족, 직업, 문화적, 생물학적, 철학적, 지역적, 영적 정체성 등)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 여러 정체성 중 하나만이 유일한 정체성인 양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어두려는 유혹, 또는 그들이 거기에 스스로 갇히도록 내버려두는 유혹이야말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의 주요 원인이라고 센은 분석한다. 누군가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핵심 부분이야말로 각 개인을 그 누구와도 다른 존재인 동시에 모두와 동등한 사람으로 만든다. (…)
이런 독특함은 올리버 색스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어려움,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몰이해, 장애로 인한 결핍을 ‘보완’하려는 엄청난 노력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어쩌면 그는 얼굴의 특징을 기억에 새기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향해 나아가려는 열의를 갖게 되었으며, 에마뉘엘 레비나스(프랑스 철학자이자 『탈무드』 주석가)가 ‘진정한 얼굴’이라고 부른 것을 찾아 나서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얼굴, 너무나 내밀해서 오로지 정신과 마음의 눈만 다가설 수 있는 얼굴 말이다.
-추천 서문, p.13-15
체코 태생인 부모님은 파리에 사는 체코인 소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나는 가끔 그 모임에서 관심사인 천문학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곤 했다. 나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수년간 천문학에 푹 빠져 있었다. 어른들은 땅딸막한 꼬마가 이런저런 별의 특징에 대해 말하는 걸 재미있어했다. 어쩌면 아이가 흥분해서 떠든다고 생각하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신과 의사가 그곳에 있었다면 ‘정신병’을 이겨내도록 내게 약을 주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시기에 사회적인 담화, 즉 관계를 만들어내는 담화, 더 근본적으로는 말한 사람을 ‘정신이 온전한 인간’으로 보게 만드는 담화를 할 능력이 거의 없었다. (…)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스위스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난 그때 엄마 아빠의 바로 앞의 덤불 속에 있었다. 하지만 두 분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때 소리 질러 답해야 한다고 내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 p.32, 34
나는 공놀이를 할 줄 모른다. 사실 내겐 공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이상한 게임’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규칙과 그때그때 정해지는 실행법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놀이를 하려면 공의 궤적을 3차원으로 시각화하는 판단력과 섬세한 운동 기능 등 상당한 신체 능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내게 어려운 일들이다. 부모님은 물건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내게 왼손만 두 개 있어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다. 아이들은 축구장에서 그보다 훨씬 못된 말을 했다. 하지만 가장 기운 빠지는 일은 아마도 그것을 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축구라는 게임을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금세 더러워지는 공을 차서 이런저런 방향으로 밀어내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
어느 날 아버지는 슈퍼마켓에서 천문학을 다룬 얇은 책 한 권을 사주었다. 나는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고 내용을 통째로 외웠다. 내 기억에 그날부터 천문학에 푹 빠져든 것 같다. 이후 아버지의 직장 동료가 『하늘과 우주』(Ciel et Espace)라는 잡지를 선물했다. 그로써 아주 오래 지속될 하나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잡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잡지를 앞표지 왼쪽 맨 윗줄부터 뒤표지 오른쪽 맨 아래에 있는 글자까지, 광고는 물론 바코드까지 죄다 외웠다. 그러고 나서야 난 외우지 않고도 잡지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참 후에는 잡지를 처음부터가 아니라 특정 부분(예를 들어 16쪽에 있는 기사)부터 읽기 시작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으로, 나는 기사와 광고의 차이를 이해했다. 물론 이 과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 p.39-40, 47
자폐인에게 가장 큰 불안을 안겨주는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예정된 일에 변화가 생기는 상황이다. 만약 누가 10시에 끝난다고 말했는데 선생님이 10시 2분에도 계속 말하고 있다면 자폐를 지닌 사람은 엄청나게 불안해진다. 이는 두 가지 규칙이 상충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10시에 교실에서 나와야 한다고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가 권위를 앞세워 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직접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하고 있다. (…)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수업이 8시 10분에 있다면 몇 시에 집에서 문을 닫고 나가야 할까? 몇 시에 양치질을 해야 할까? 필요한 물건이 가방에 들어 있는지 몇 시에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할까? 필요한 물건은 뭐지? 정해진 교과서와 공책 외에도 귀마개나 간식, 우산, 우산이 바람 때문에 망가질 경우를 대비한 보조 우산, 학교에서 정전이 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손전등, 화재 대피용 노끈, 집 근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가이거계수기 등은 어느 정도 얼마나 필요할까?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에 늦게 도착하면서도 태평하게 앉아 있는 열등생의 태도는 자폐인에게는 ‘넘사벽’으로 느껴진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키면 어느 정도까지 스트레스를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까? 이 모든 질문에 답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더욱이 이 질문들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아마도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발견할 수 있다.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왕위 계승 분쟁이 결국 해당 주역들의 자연사와 함께 종결된 것처럼 말이다.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 p.52, 55
시앙스포에 도착한 첫날,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 (…) 나는 그날 아침 매우 일찍, 그러니까 적어도 소집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얼마나 일찍 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컴한 새벽 거리에서 혼자 닫힌 문 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장소와 시간을 착각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며 기다렸다. 나는 쥘 베른이 묘사할 법한 행성 간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이,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보조 식량부터 화장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이 담긴 큰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2장. 규칙은 어디까지 규칙이지?, p.69
가장 거북했던 순간들을 거론할 차례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신랄한 사람은 이것도 수업의 연장이라고 하겠지만) 작은 식당 혹은 카페에서 만나곤 했다. 하지만 난 식당과 카페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른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 난 식당에 혼자 가지 않았고, 특별히 ‘허가받지’ 않고도 식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학급의 학생 하나가 나더러 그 자리에 오라고 거듭 권했다. “그러지 말고 오라니까! 와, 조제프.”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모임에 초대받자 나는 겁을 먹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 학생은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한 끝에 자기가 내 음료수 값을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도망쳤다.
내 판단도 부정확했다. 1년 내내 한 번도 내게 친밀감을 보이지 않다가 어째서 갑자기 나를 초대하는 걸까? 내게 별안간 분풀이를 하려는 걸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식당에 간다니 무슨 엉뚱한 생각인가? 그런 모임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학기가 끝났고 이제 집에 가서 여름내 책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식당에 갈 이유가 있을까? 오렌지주스는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데….
-2장. 규칙은 어디까지 규칙이지?, p.74-76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활짝 열어 보인 한 자폐 지성인의 증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엔 너무 멍청하다고 여겨지던 아이, 늘 백치나 지적장애인 취급을 받던 청소년, 왕따를 당하고 친구들에게 자주 맞아 학교 가기 싫어했던 아이, 간단한 인사를 하거나 카페에 들어가는 일도 버거워하고 빵을 사거나 전화 통화 같은 사소한 일로도 불안해하던 그 청년.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바칼로레아(프랑스의 ‘수능’)를 통과하고, 고대 문명에 심취하여 독학으로 10개 언어를 배웠으며(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아마르어, 아제르바이잔어, 에티오피아어, 체코슬로바키아어, 독일어, 핀란드어, 영어), 프랑스 명문대 시앙스 포(Sciences Po, 파리정치대학) 졸업 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남자.
이 둘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회적 능력에는 매우 서툴다. 지하철을 타거나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여전히 험난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고, 전화벨이 울릴 때 공황장애 비슷한 것을 경험한다. 지나가며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 공놀이를 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왜 축구라는 게임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평소 겪는 불안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바칼로레아 구술시험’을 앞두고,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큰 짐을 안고 살아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조리 있게 감(感)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사회적 맥락 파악에도 더디다. 기차 검표원이 승객에게 다가와 이렇게 묻는다. “당신 표를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자폐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오, 당신은 표를 볼 수 없습니다. 그 표는 내 주머니 안에 있으니까요.” 자폐를 지닌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자폐를 지닌 어린이는 대체로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더욱 부족하다. 취업 면접 시 미래의 직장 상사 앞에서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여기 냄새가 참 고약하네요!” (거짓말을 못 하는 것이다.)
자폐인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제기된 문제 또는 주어진 상황의 모든 측면을 생각한다. 만약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의 모든 단계를 계획한다. 여행 가방을 어떤 날에 준비해야 할지 알아야 하고, 가져가야 할 물건 목록뿐 아니라 그 물건들을 어떤 순서로 가방에 넣을지도 미리 생각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각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파리의 한 식당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자기에게 익숙한 장소라고 해도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맨 끝에야 식당 건물 앞에 도착한다. 그러고서 이렇게 생각한다. ‘저기에 들어갈까 말까? 어느 순간에 문을 밀고 들어가야 할까? 식당에 10시에 오라고 했는데, 식당 앞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홀을 말하는 걸까? 5분 전에 도착해도 되나? 5분 후에 도착해도 되나? 그 두 경우에 사람들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걸까? 그러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결국, 우리가 각자 독특하고 소중한 존재인 이유
그는 자신이 세상의 어떤 틀에도 들어맞지 않음을 발견한다. 어찌 보면 서글프고 심각한 이야기들인데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열어보인다. 지금까지 가족이나 전문가, 제3의 관찰자 입장에서 자폐인을 기록한 글은 제법 있었지만 자폐인이 인식하는 세계에 대해 자폐인이 직접 기술한 생활 속 이야기는 처음이다.
재치와 우아함, 용기, 적절한 거리감과 유머, 소양이 가득 담긴 특별한 모험담으로 자신의 자폐증상을 정리한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이며, 평소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능력이 정말 그렇게 인정받을 만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자폐를 지녔든 아니든(아니면 특정한 약점이 있든 아니든) 우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과 인간 됨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같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자폐인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비자폐인과 사뭇 다르다. 가령 할리우드 배우 부부에 관한 글을 읽고 난 후 저자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언어의 문법적 특징은 훨씬 쉽게 기억한다.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일부 자폐인은 천재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갈망을 극대화한 드문 사례라고 본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특수한 관심사를 마음껏 파고들 자유가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진 덕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자폐인’이라고 하지 않고 ‘자폐증을 지닌 사람’으로 표현한다. 여행 가방을 지니고 다니듯 그다음 날에 자폐증을 집에다 놔둘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어떻든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가 ‘지닌’ 자폐증은 그가 10개국어를 하고, 신장이 195센티미터이며, 체코 출신 프랑스인이라는 것과 같은 여러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