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프로이트보다 앞서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다
선과 악, 이성과 광기의 경계에서
인간을 적나라하게 탐구한 역작
인간의 이중성을 가장 매혹적으로 풀어낸 대표작 4편
삽화계의 거장 3인의 일러스트와 필수 배경지식 수록
★ 하버드대 신입생 권장 도서
★ BBC 선정 “위대한 작가”
★ 『가디언』 선정 “모든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
가로등 그림자가 음침하게 드리운 런던 밤거리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난다. 사건에 연루된 친구 지킬을 구하려고 범인을 추적하던 어터슨 변호사는 연거푸 기이한 일을 겪는다. 마침내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그동안 감춰져 있었던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대표작이자 이중인격을 소재로 한 문학·방송·공연예술의 효시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라는 오랜 난제에 대해 작중인물 지킬은 인간 안에 선과 악, 두 가지 본성이 혼재한다는 가설을 세운다. 마음속에서 선악을 분리하면 더 자유로워질 거로 믿은 그는, 연구 끝에 악한 본성을 끄집어내는 법을 터득하고 이중생활을 즐겼으나, 결국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파멸한다. 이처럼 스티븐슨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기도 전에,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잠재된 이중성과 내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매혹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 책에는 인간의 무의식에 관한 통찰이 담긴 세 작품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실제 있었던 ‘해부용 시체 거래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한 「시체 도둑」에서는 선악이 팽팽하게 공존하는 긴장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인간성 상실과 타락한 세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영문학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마크하임」은 살인자의 심리 묘사를 통해 선악과 양심,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특히 사건 현장의 빛과 어둠, 소음과 침묵의 대비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며 선악의 갈등을 뚜렷이 보여주는 기법은 독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병 속의 악마」는 악마와 거래한다는 익숙한 설정을 활용해서 탐욕과 이기심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와 자기희생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겉과 속이 달랐던 빅토리아시대를 풍자하면서, 진정한 악은 뒷골목 그림자 속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스티븐슨의 작품들을 삽화계의 거장 3인의 일러스트와 당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 맥을 짚어주는 해제와 함께 완역으로 선보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문[門] 이야기
-하이드 씨를 찾아서
-느긋한 지킬 박사
-커루 경 살인 사건
-편지 사건
-래니언 박사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건
-창가에서 벌어진 일
-마지막 밤
-래니언 박사의 이야기
-헨리 지킬의 진술
병 속의 악마
시체 도둑
마크하임
해제 | 서창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연보
지은이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185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이름난 등대 기술자 토머스 스티븐슨과 명문가의 딸 마거릿 이사벨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허약한 체질을 물려받아 병치레가 잦았고, 늘 호흡기질환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습작을 자주 했으며, 1866년에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첫 책을 자비출판 했다.
대를 이어 엔지니어가 되길 바라는 집안의 뜻에 따라 1867년 에든버러 대학 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법학과로 전과했고, 1875년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나 결국 법률가가 아닌 작가의 길을 택했다. 비록 몸은 약했으나 쾌활하고 모험을 좋아했던 그는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지, 미국, 남태평양 도서 지역까지 두루 다니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했고, 이때의 경험으로 얻은 인간 심리와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을 작품에 녹여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소설 및 에세이를 꾸준히 써왔던 그는 아동문학의 교훈성을 탈피한 소설 『보물섬』(1883년)으로 단번에 명성을 얻었다. 그 뒤로 「시체 도둑」(1884년), 「마크하임」(1885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년), 『납치』(1886년), 「병 속의 악마」(1891년) 등 인간의 본성과 선악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발표해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아서 코난 도일에게 “소설의 모든 영역을 완벽히 터득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1889년부터는 남태평양 사모아에 정착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가 1894년(44세)에 뇌출혈로 사망했는데, 평소 ‘투시탈라’(이야기꾼)라고 부르며 가까이 지내던 원주민들이 자기들의 성지인 바에아산에 그를 안장했다. 묘비에는 그의 성격과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즐겁게 살았고 또한 기꺼이 죽노라.”
그린이 ∥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Edmund Joseph Sullivan, 1869-1933)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헤이스팅스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세부터 신문과 잡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98년 토머스 칼라일의 『의상철학』 삽화를 그려서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삽화는 물론, 광고, 초상화, 만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영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전통에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화풍으로 독특한 작품을 남겼다. 미술 노동자 조합의 회장을 역임했고, 골드스미스 미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윌리엄 하터렐(William Hatherell, 1855-1928)
「병 속의 악마」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880년대부터 삽화가로 활동했다. 왕립 수채와 협회, 왕립 유화 협회,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의 회원을 지냈다. 역사화를 비롯해 「아서왕 전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토머스 하디의 『비운의 주드』 등 수많은 책의 삽화를 그렸다.
아치볼드 스탠디시 하트릭(Archibald Standish Hartrick, 1864-1950)
「시체 도둑」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도시의 일상과 풍경, 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며, 특히 석판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배운 뒤 런던과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고갱, 고흐 등 후기인상파 화가들과 교유했다. 삽화가로 활동하면서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정기 전시회를 열었고, 베니스 비엔날레와 1932년 올림픽 미술 대회에서도 작품을 전시했다.
옮긴이 ∥ 서창렬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비롯하여 캐런 조이 파울러의 『부스』,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스티븐 밀하우저의 『밤에 들린 목소리들』, 조이스 캐럴 오츠 외 작가 40인의 고전 동화 다시 쓰기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저지대』, 시공로고스총서 『아도르노』, 『촘스키』, 『아인슈타인』, 『피아제』, 자크 스트라우스의 『구원』, 데일 펙의 『마틴과 존』, 스콧 피츠제럴드 작품집 『어느 작가의 오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글쎄, 이런 일이 있었다니까요. 아주 먼 곳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어두컴컴한 겨울 새벽 세 시쯤이어서 길거리에 문자 그대로 가로등 불빛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죠. (…)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이며 걷다 보니 경찰관이라도 봤으면 하고 바라게 되더군요. 그때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났어요. 한 사람은 키가 작은 남자로 동쪽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었어요. 다른 한 사람은 여덟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로 교차로를 향해 있는 힘껏 달리고 있었죠. 그런데 형님, 두 사람이 그만 길모퉁이에서 부딪쳤는데,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요. 남자가 여자아이의 몸을 태연히 짓밟더니,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데도 그냥 내버려두고 가는 겁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20-21쪽
하이드는 창백하고 왜소했으며 딱히 뭐라고 할 만한 장애가 없는데도 기형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미소는 불쾌했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소심함과 대담함이 위험하게 뒤섞여 있었다. 또 쉰 목소리로 나직하게 더듬더듬 말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을 합친다 해도 그자를 보고 느낀 알 수 없는 역겨움, 혐오감, 공포 따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36쪽
“변호사님, 방금 들은 게 우리 주인님 목소리 같던가요?” 풀이 어터슨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많이 바뀐 것 같네.” 변호사가 몹시 창백해진 얼굴로 풀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바뀌었다고요?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0년 동안이나 이 집에서 주인님을 모셔온 제가 목소리를 모르고 속아 넘어가겠습니까? 아닙니다, 변호사님. 주인님은 돌아가신 겁니다. 여드레 전에 주인님이 하느님을 부르며 소리치는 걸 들었는데, 그때 돌아가신 겁니다. 그런데 주인님 대신 거기 있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왜 계속 거기 있는 걸까요? 하느님이나 아시겠지요, 변호사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73쪽
나는 이중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결코 위선자는 아니었다. 나의 양면은 둘 다 매우 진지했다. 자제심을 팽개치고 부끄러움 속으로 뛰어드는 나는, 대낮의 밝은 빛 속에서 지식을 쌓거나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둘 다 나 자신이었다. 그 와중에 신비하고 초월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던 연구는 내 안의 이중적인 요소 사이에 일어나는 끊임없는 싸움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게 해주었다. 나는 날마다 내 지성의 양면인 도덕적인 면과 지적인 면에서 꾸준히 진리에 접근했는데, 그 진리의 일부를 발견한 결과 끔찍한 파멸을 맞이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 진리란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103쪽
“이거, 이상한 물건이네요. 눈으로 보아도, 손으로 만져봐도 유리로 만든 게 분명한데.”
“당연히 유리지.” 남자가 전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러나 저 유리는 지옥 불로 달군 거라네. 이 병 안에는 악마가 살고 있어. 우리 눈앞에서 움직이는 저 그림자가 바로 악마라고. 내 생각엔 그래. 누가 이 병을 사든, 악마는 병의 주인이 내린 명령에 복종한다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말만 하면 들어주지. 사랑이든, 명예든, 이 집과 같은 멋진 집이든,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든 다 손에 넣을 수 있어. 나폴레옹도 이 병을 가진 덕분에 세계의 왕이 된 거야. 그러나 결국엔 병을 팔아버렸고, 그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어. (…) 일단 병을 팔고 나면 병의 효력과 보호 능력이 구입한 사람에게 옮겨가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어르신은 이걸 파시겠다는 겁니까?”
-병 속의 악마, 134-136쪽
창백해진 얼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공포가 페티스의 마음속에서 점점 커졌다. 시체 자루를 한 번 더 쳐다보고 나서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맥팔레인이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저건 여자가 아니야.” 맥팔레인이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루에 넣을 땐 여자였잖아요.” 페티스가 나직이 말했다.
“이 등을 좀 들어줘. 얼굴을 봐야겠어.”
페티스가 등을 받아 들자 맥팔레인이 끈을 풀고 머리 쪽부터 자루를 벗겨 내렸다. 거무스름하고 잘생긴 이목구비와 깨끗하게 면도한 뺨이 불빛에 드러났다. 두 젊은이가 꿈에서 종종 보았던,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거칠고 사나운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시체 도둑, 219-221쪽
“이 정도면 적당할 것 같소.”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 순간 마크하임이 뒤에서 그를 덮쳤다. 꼬챙이 같은 단검이 번쩍이더니 아래로 내리꽂혔다. 주인은 암탉처럼 버둥거리다가 선반에 관자놀이를 부딪치고는 풀썩 쓰러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가게 안에 있는 시계들이 수십 종류의 소리를 냈다. 어떤 시계는 세월에 걸맞게 묵직하고 느긋했으며, 어떤 시계는 수다스럽고 촐싹댔다. 모든 시계가 똑딱똑딱 째깍째깍 섬세한 화음을 이루며 매 순간을 노래했다. 그때 보도를 달리는 한 젊은이의 묵직한 발소리가 시계의 작은 목소리 사이로 끼어들었고, 마크하임은 깜짝 놀라 두려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크하임, 230쪽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잠재된 이중성과 내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매혹적으로 풀어낸 역작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밤, 가스등이 음침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구석진 골목마다 비밀이 도사린 빅토리아시대(1837년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다스리던 시대) 런던 거리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교훈성을 탈피한 모험소설 『보물섬』(1883년)으로 아동문학의 신기원을 열었던 스코틀랜드 작가 스티븐슨은,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고 선악의 다툼을 조명한 공포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년)를 발표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는 수천 년간 계속되었다. 동양에서는 맹자가, 서양에서는 루소가 성선설을 주장했으며, 동양의 순자와 서양의 홉스는 성악설을 내세웠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인간에게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티븐슨은 이 소설에서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작중인물 지킬은 인간 속에 선과 악, 두 가지 본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약물을 투여해서 둘을 분리한다. 점잖고 도덕적인 신사였던 그는 종종 하이드로 변신해서 본인의 고백처럼 “쾌락을 위한 범죄”를 저지르며 양심에 거리낌 없이 마음껏 일탈을 즐긴다. 하지만 점점 하이드에게 영혼을 잠식당하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인간의 원형적 체험을 탁월한 솜씨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출간 6개월 만에 4만 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 대부분은 내 안에 하나가 아닌 둘, 심지어 그 이상의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 자아들은 의식의 표면에서, 혹은 무의식의 심연에서 무시로 갈등하며 싸우고 화해한다. “이 같은 인간의 본성에서 충동적이고 악한 자아를 분리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에 대한 답을 스티븐슨은 치열하게 탐구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명료하게 풀어낸다. 또한 사회에서 허용되는 행위의 경계선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질문하면서, 겉으로는 도덕을 중시하지만 내면은 타락한 빅토리아시대의 위선적인 사회상을 꼬집고 있다.
출간 당시에는 말초신경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통속소설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으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중성 너머의 예술적 가치를 새로이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을 세밀한 묘사와 뉘앙스까지 온전히 살린 완역으로 선보인다.
결말을 알고 읽어도 흥미로운 소설
곳곳에 감춰둔 암시를 찾는 재미
단편소설의 묘미는 기발한 반전에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그 원칙에 충실한 작품이다. 출간 당시만 해도 독자들이 결말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킬과 하이드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스포일러 축에 끼지도 못할 만큼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는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문체에 있다”라고 평가한 평론가 나보코프의 말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문장과 치밀한 묘사, 인물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대사는 독자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결말을 이미 아는 상태로 등장인물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배경과 인물의 성격, 작가의 의도, 작품 속에 담긴 사상과 문화 등을 낱낱이 살펴볼 여유를 갖게 된다.
작가가 곳곳에 배치한 암시와 상징을 하나씩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의미심장하다. 지킬(Jekyll)은 ‘je’(‘나’를 뜻하는 프랑스어)와 ‘kyll’(영어의 ‘kill’과 같은 발음)의 합성어로 ‘나를 죽인다’라는 뜻이다. 하이드(Hyde)는 ‘숨다’ 혹은 ‘(동물의 거친) 가죽’이라는 뜻의 ‘hide’와 같은 발음으로, ‘숨어 있음’ 또는 ‘동물적 본능’을 의미한다. 지킬의 체격이 하이드보다 큰 것은 인간의 선하고 이성적인 면이 악하고 충동적인 면보다 강함을 나타낸다. 지킬보다 젊고 활력 있는 하이드의 성향은 인간의 악한 본성이 순진한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점점 발달한다는 뜻이다. 또 악한 본성 자체가 더 흥미진진하다는 걸 암시하기도 한다. 이는 처음 하이드로 변했을 때 “몸이 더 가벼워지고 행복해졌으며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라는 지킬의 진술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킬과 하이드로 대비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밝고 웅장한 광장에 있는 지킬의 집과 음침하고 축축한 소호 거리에 있는 하이드의 집이 대조를 이루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심리학보다 먼저 무의식을 탐구한 또 다른 역작
「병 속의 악마」, 「시체 도둑」, 「마크하임」
이 책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외에도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 3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병 속의 악마」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우연한 기회에 ‘소원을 이뤄주는 병’을 손에 넣어 부자가 된 케아웨는 저주를 피하려고 병을 처분했으나 불치병에 걸리자 병의 행방을 찾아다닌다. 눈앞의 행복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내준다는 익숙한 설정을 활용해서 탐욕과 이기심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와 자기희생의 숭고한 가치를 곱씹게 한다.
실습용 시체를 구하는 과정에서 불법 거래와 도굴에 발을 들인 의대생 페티스가 어느 날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가져오다가 오싹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의 「시체 도둑」은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한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 특유의 환상적 요소를 더하고, 선악이 팽팽하게 공존하는 심리적 긴장 관계를 시종일관 유지함으로써 인간의 악마성과 이중성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긴박감이 감도는 사건 전개 과정과 결말의 오싹한 반전은 공포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크하임」은 영문학에서 무척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소설이다. 크리스마스 날, 돈을 훔치려고 단골 골동품 상점을 찾아가 주인을 살해한 마크하임 앞에 악마의 화신인지 양심의 화신인지 모를 낯선 존재가 나타나고, 마크하임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기의 내면을 깊이 성찰한다. 살인자의 심리 묘사를 통해 선악과 양심,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으로 특히 사건 현장의 빛과 어둠, 소음과 침묵의 대비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며 선악의 갈등을 뚜렷이 보여주는 기법은 독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빅토리아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3인의 작품과 필수 배경지식 수록
각 작품에 수록된 21세기 대표 작가 3인의 일러스트는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갈 뿐만 아니라 텍스트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전해준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는 영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전통에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화풍으로 독특한 작품을 남긴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의 일러스트를 수록했다. 「병 속의 악마」에는 역사화를 비롯해 「아서왕 전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토머스 하디의 『비운의 주드』 등 수많은 문학책의 일러스트를 그린 윌리엄 하터렐의 작품을 넣었다. 「시체 도둑」의 일러스트는 도시의 일상과 풍경,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고갱, 고흐 등 후기인상파 화가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석판화의 대가로 알려진 아치볼드 스탠디시 하트릭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