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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신화 분야 누적 판매량 압도적 1위
초판 발행 80주년 기념, 컬러 도판 100장 포함 전면 개정판
“지금까지 해밀턴만큼 그리스의 영광과 로마의 장엄함을 생생하게 되살린 작가는 없다.”
_『뉴욕타임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독교의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을 형성해왔다. 문학,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등 서양 학문과 사상의 원천이 되어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예술 분야에도 풍부한 영감과 창의성을 제공해왔다. 오늘날에는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매력적인 모티브를 제공하는 ‘스토리텔링의 근원’이 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神話學者)이자 스토리텔러인 이디스 해밀턴은 1942년 초판 발행된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에우리피데스부터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까지, 더불어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와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에 이르는 수많은 현인의 고대 원전을 연구하고 그중 최고 작품을 엄선해 신화의 정수만을 담아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천둥과 번개는 제우스가 벼락을 내리칠 때 일어나는 일이고, 화산 폭발은 거대한 산에 갇혀 있는 괴물이 탈출하려 애쓸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북두칠성은 여신의 명령으로 수평선 아래로 지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해밀턴이 보기에 신화는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의 과학’이었다. 비인간적인 주술과 마법에 대한 숭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思考) 혁명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보았던 이디스는 이런 관점에서 신화를 독특하게 재해석한다.
시대가 다르고 사는 곳도 바뀌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신화를 읽고 재해석하면서 마음속에 ‘자기만의 신전’을 지어왔다. 이러한 찬란한 발자취를 담아내기 위해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수십 명의 예술가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창작한 회화 및 조각 작품 총 100편을 정선해 수록했다. 텍스트와 함께 다채로운 이미지와 걸작을 감상하다 보면, 독자들은 다양한 시선으로 신화를 음미하고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머리말
서론
제1부 신들, 세상의 창조, 초기의 영웅들
제1장 신들
티탄 족과 올림포스의 열두 신
제우스(유피테르)
헤라(유노)
포세이돈(넵투누스)
하데스(플루톤)
팔라스 아테나(미네르바)
포이보스 아폴론
아르테미스(디아나)
아프로디테(베누스)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아레스(마르스)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 또는 물키베르)
헤스티아(베스타)
올림포스의 하위 신들
물의 신들
지하 세계
지상의 보통 신들
로마 신들
제2장 지상의 위대한 두 신
데메테르(케레스)
디오니소스 또는 바쿠스
제3장 세상과 인류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제4장 초기 영웅들
프로메테우스와 이오
에우로페
키클로프스 폴리페모스
꽃에 얽힌 전설들: 나르키소스, 히아킨토스, 아도니스
제2부 사랑과 모험 이야기
제5장 큐피드와 프시케
제6장 연인들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 여덟 편
피라모스와 티스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케익스와 알키오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바우키스와 필레몬
엔디미온
다프네
알페이오스와 아레투사
제7장 황금 양털을 찾아서
제8장 네 개의 위대한 모험
파에톤
페가수스와 벨레로폰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다이달로스
제3부 트로이 전쟁 이전의 위대한 영웅들
제9장 페르세우스
제10장 테세우스
제11장 헤라클레스
제12장 아탈란테
제4부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
제13장 트로이 전쟁
발단: 파리스의 심판
트로이 전쟁
제14장 트로이 함락
제15장 오디세우스의 모험
제16장 아이네이아스의 모험
트로이에서 이탈리아로
저승 세계로 내려감
이탈리아에서의 전쟁
제5부 신화에 등장하는 위대한 가문들
제17장 아트레우스 가문
탄탈로스와 니오베
아가멤논과 그의 자식들
타우리스인들과 이피게네이아
제18장 테바이 왕가
카드모스와 그의 자식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군
제19장 아테네 왕가
케크롭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프로크리스와 케팔로스
오레이티아와 보레아스
크레우사와 이온
제6부 기타 신화들
제20장 미다스와 기타 인물들
아스클레피오스
다나이스 자매들
글라우코스와 스킬라
에리식톤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제21장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짤막한 신화들
그리스 로마 신 이름 비교
주요 가계도
지은이 ∥ 이디스 해밀턴(Edith Hamilton, 1867~1963)
세계적인 신화 스토리텔러이자 교육자, 작가인 이디스 해밀턴은 1867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미국인 부모 밑에 태어나 미국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해밀턴이 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가르쳤다. 1884년 코네티컷주 파밍턴에 있는 미스 포터스 스쿨을 졸업하고, 1886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브린모어 대학교에 입학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하며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1893년 미시간 대학교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했고, 장학생으로 독일로 건너가 뮌헨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학교에 들어온 최초의 여학생이었다. 이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도 병리학을 공부했다.
1896년 미국으로 돌아온 해밀턴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브린모어 예비학교의 교장직을 시작해 26년 동안 매년 약 400명의 학생을 지도했다. 1922년 교장직에서 은퇴한 뒤 그리스 희곡에 관한 학술 논문을 집필해 출간하기 시작했다. 63세인 1930년에 고대 그리스와 현대 세계의 유사점을 비교 분석한 『그리스의 방식』을 출간했는데,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1932년에 출간한 『로마의 방식』도 큰 사랑을 받았다. 뒤이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1936), 『진리의 증인: 그리스도와 그의 해석자들』(1949),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번역본인 『세 편의 그리스 희곡』(1937), 『그리스 문학의 위대한 시대』(1943), 『신의 대변인』(1949), 『그리스의 반향』(1957) 등을 출간했다.
1957년 90세의 나이에 그리스로 건너가 아테네 명예시민이 되었고, 자신이 번역한 그리스 희곡의 연극 공연을 아크로폴리스 앞에서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고향에서도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회원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수많은 명예 학위와 상을 받았다. 1963년 5월 31일 워싱턴 D.C.에서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 서미석
서울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20년 이상 전문번역가로 활동한 베테랑 번역가다. 『칼레발라: 핀란드의 신화적 영웅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러시아 민화집』, 『아이반호』, 『북유럽 신화』, 『호모 쿠아에렌스: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본 인류문명사』, 『십자군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 『로빈후드의 모험』 등 다양한 책들을 번역하였고, 특히 문학 작품의 번역에 있어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았다.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히브리 사상이 아니라 그리스 사상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리스에서만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집착했다. 그들은 주변 세상에 실제 존재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조각가들은 경기를 뛰는 운동선수들을 보면서, 젊고 강한 육체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를 상상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폴론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신화 작가들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헤르메스를 발견했을 것이다. 호메로스가 표현한 대로, 작가들은 헤르메스 신을 ‘청춘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청년’으로 보았다. 그리스 예술가들과 시인들은 인간이 얼마나 멋지고 곧고 빠르고 강인한지 깨달았다. 인간은 그리스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미의 실현이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만 완성할 수 있는 형상을 창조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스의 모든 예술과 사고는 인간에게 집중되었다
_서론, p.18
그리스 신화는 여러 남신들과 여신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리스 종교를 설명하는 일종의 경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최근 이론에 따르면, 실제 신화는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신화는 단지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예를 들면, 우주 속 삼라만상이나 어떤 특정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 동물, 다양한 나무와 꽃, 태양, 달, 별, 폭풍, 화산 폭발, 지진 등 존재하는 모든 것과 발생하는 모든 일이 포함된다. 천둥과 번개는 제우스가 벼락을 내리칠 때 일어나는 일이며, 화산 폭발은 거대한 산에 갇혀 있는 괴물이 탈출하려고 애쓸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큰곰자리로 불리기도 하는 북두칠성은 화가 난 어느 여신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수평선 아래로 지는 법이 없다.
말하자면 신화는 고대 과학인 셈이며, 인간이 주변 존재들을 설명하고자 최초로 시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_서론, p.22
제우스는 여인들과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며, 아내에게 자신의 부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온갖 파렴치한 속임수를 동원한다. 최고의 위엄을 갖춘 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여러 신들이 한데 융합되어 제우스에 대한 노래와 이야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배 신이 존재하고 있던 도시에 제우스 숭배가 퍼지면서 두 신은 서서히 하나로 융합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던 신의 아내는 제우스에게 양도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행했고 후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끝없는 연애 행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 기록에서도 제우스는 이미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Agamemnon)은 이렇게 기도를 올린다. “제우스시여, 가장 영예롭고 가장 위대하며 하늘을 주재하시는 폭풍우의 신이시여.” 제우스는 인간에게 제물뿐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요구한다. 트로이(Troy)에 주둔하던 그리스 군대는 이런 말을 들었다. “아버지 제우스는 거짓말쟁이나 맹세를 깨뜨리는 자들은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 이처럼 천박한 제우스와 고귀한 제우스는 오랫동안 나란히 공존해왔다.
_제1장 신들, p.35
대부분의 신들과 다르게 참으로 인류의 가장 좋은 친구라 할 수 있는 두 신이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로 라틴어로 케레스라고 불린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와, 바쿠스라고 불리기도 했던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였다. 두 신 중에 당연히 데메테르가 더 오래된 신이었다.
이 두 신이 함께 숭배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신 모두 대지의 훌륭한 선물이자 생명의 양식인 빵을 먹고 술을 마시는 행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수확기에 디오니소스 축제도 열렸으며 이 시기는 바야흐로 포도가 포도주로 변하는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가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데메테르 역시 여름 동안은 행복하지 않았다. 두 신 모두 환희만큼이나 고통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런 식으로 고통받는 신이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곡식을 거둬들이고 포도를 수확한 뒤 들판에 어린 새싹들을 죽이며 검은 서리가 내려앉을 때, 곡식 줄기와 풍성했던 포도덩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것이 바로 눈앞에서 늘 나타나는 변화, 즉 낮과 밤, 계절, 별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어내며 자문했던 것이다. 데메테르와 디오니소스가 추수기에는 행복한 신이지만 겨울 동안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그들은 비탄에 잠기고 대지도 슬퍼했다. 오래전 옛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했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다.
_제2장 지상의 위대한 두 신, pp.81~85
태초에 대한 이러한 모든 생각 속에는 아직 공간과 존재가 명확한 구분을 이루지 않았다. 대지는 굳건한 토대이면서 막연하게나마 인격을 띠고 있었다. 하늘은 저 높은 곳에 있는 푸른 창공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에게 온 우주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생명체로 존재했다. 만물은 개별적인 인성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든 것, 생명의 뚜렷한 특징을 이루는 모든 것을 의인화했다. 겨울과 여름의 대지, 움직이는 별로 가득 찬 하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바다가 모두 의인화되었다. 그런데 아직은 어렴풋하게 의인화되었으므로 자연은 움직임으로써 변화를 가져오고, 그럼으로써 살아 있는 거대하고 막연한 어떤 것이었다.
초기 이야기 작가들은 사랑과 빛의 출현을 말하면서, 인류 등장에 대한 배경을 마련했으며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의인화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자연의 힘에 독특한 형체를 부여했다. 작가들은 자연의 힘을 인간의 선구자로 여기고 하늘이나 땅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각각 인격으로 정의했다. 작가들은 자연의 힘이 마치 인간이 행동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예를 들면, 대지와 하늘은 분명 그러지 않지만 자연의 힘은 사람처럼 걷거나 먹기도 했다. 하늘과 대지, 이 둘은 분리되어 있었다. 만일 그 둘이 살아 있다면 그들만이 갖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_제3장 세상과 인류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p.111
유럽에서 위대한 여정을 완수해낸 최초의 영웅은 바로 황금 양털을 찾아 나선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그는 『오디세이아』의 영웅이자 그리스의 가장 유명한 방랑자 오디세우스보다 한 세대 이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여정은 물론 해로를 통한 여행이었다. 강, 호수, 바다가 당시 유일한 고속도로였다. 육로는 없었다. 여행자들은 물 위에서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동일하게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배는 밤에 항해할 수 없었으므로 폭풍우나 난파보다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괴물이나 마법사가 살고 있다 해도 일단 선원들은 배를 정박하기 위해 상륙해야 했다. 그래서 여행을 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그리스 외곽으로 여행할 경우 특히 더 그랬다.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아르고 호를 타고 항해한 영웅들의 경험담만큼 이런 사실을 더 잘 입증하는 것은 없다.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원정대가 수많은 위험과 맞서야 했던 항해가 실제 있었는지 의심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명성이 자자했던 영웅들로 몇몇은 그리스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으며 그 모험만큼이나 유명했다
_제7장 황금 양털을 찾아서, p.214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 헤라클레스는 아테네의 위대한 영웅 테세우스와는 혈통이 전혀 다르다. 헤라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을 제외한 모든 그리스인이 최고로 숭배하는 영웅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다른 그리스인들과는 조금 달랐으므로 영웅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테세우스도 물론 다른 모든 영웅처럼 용감했지만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인정이 많고 지성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그리스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달리 생각하는 힘을 높이 평가했으므로 그와 같은 영웅을 숭배하는 것은 당연했다. 테세우스를 통해 아테네인들의 이상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반면 헤라클레스는 그리스의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구현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자질은 일반적으로 그리스인들이 존경하고 숭배하던 것들이었다. 불굴의 용기를 제외하면, 헤라클레스의 자질은 테세우스를 돋보이게 한 자질과는 달랐다.
_제11장 헤라클레스, p.289
드디어 한밤중이 되자 목마의 문이 열렸다. 족장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목마에서 내려왔다. 성문까지 살금살금 다가가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깊이 잠에 빠져 있던 도시 안으로 그리스 군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리스 군은 처음에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모든 일을 조용히 처리해나갔다. 곧 도시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난 트로이인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무장하려고 애쓰는 사이 트로이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당황한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스 군은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사람들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었다. 수많은 트로이 사람들은 제대로 반격할 기회조차 없이 죽어갔다. 시내 중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트로이인들이 점차 모이자 이번에는 그리스 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트로이인들을 막아내느라 그리스 군은 힘이 들었다. 그리스 군은 정복당할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바로 배수진임을 알았다. 배수진의 정신이 전세를 되돌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기민한 트로이인들이 죽은 그리스 군의 갑옷을 걸치자 그리스 군은 그들을 아군으로 여겼다. 그들이 적군인 것을 깨달은 순간은 너무 늦었고, 실수의 대가로 생명을 잃었다.
_제14장 트로이 함락, p.363
그리스 로마 신화,
기독교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을 형성하다
서양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 위에 세워졌다. 넓은 의미에서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가리키고, 헤브라이즘은 고대 근동에서 시작된 기독교 문화를 가리킨다. 헬레니즘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면, 헤브라이즘의 중심에는 ‘신(神)’이 있었다. 서양 문명은 ‘신’이 지배한 중세 천년을 거친 뒤 고전 시대의 ‘인간’을 재발견한 계몽의 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간 중심적인 헬레니즘에 신화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디스 해밀턴은 서론에서 ‘그리스의 기적(the Greek miracle)’을 언급하면서 고대 그리스에는 이전 세계에서 꿈도 꾸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 인간은 하찮은 존재였지만, 그리스의 등장과 함께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신을 만들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고대 이집트의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인 신들과는 다르게, 가장 인간적이고도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신들에게 투영했다. 신들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들만 봐도 젊고 강한 사람의 육체로 묘사해놓았는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는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리스의 신들이 기독교의 신처럼 완전무결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질투하고 분노하고 실수도 저지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의 재발견’이 낳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 문명, 나아가 인류 문명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문학,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등 서양 학문과 사상의 원천이 되었고,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예술 분야에도 풍부한 영감과 창의성을 제공해왔다. 오늘날에도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매력적인 모티브를 제공하는 ‘스토리텔링의 근원’이 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 이디스 해밀턴,
고대 원전 중 최고 작품을 엄선하다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이디스 해밀턴은 우연찮게도 토머스 불핀치가 세상을 떠난 1867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일곱 살 때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익힐 정도로 언어 감각이 남달랐다. 여성이 공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19세기,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해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6년 동안 역임한 교장직에서 은퇴한 뒤로도 40년 동안 고전을 연구하고 다양한 저작을 남기면서 탁월한 신화학자(神話學子)로 자리매김했다. 90세가 되던 해에는 연구 및 집필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아테네 명예시민에 추대되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명예 학위와 상을 받았다.
당시 여성 작가들 사이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대중이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각색하거나 윤색하는 것이 유행했다. 하지만 고전학자 특유의 자부심으로 해밀턴은 각색보다는 원전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에우리피데스부터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까지, 나아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와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에 이르는 수많은 고대 원전을 연구하고 그중 최고 작품만을 엄선해 신화의 정수를 담아내려고 했다. 고전 문학에 대한 남다른 탐구열과 섬세한 분석력으로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역작을 남길 수 있었다.
해밀턴은 단순히 고전을 ‘수집’만 한 것은 아니다. 고대 원전을 비교 분석한 뒤 각 이야기 첫머리에 어떤 작가의 작품을 참고했는지, 그 작가의 특징과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지 간결하게 설명해놓았다. 예컨대, 농부 출신 헤시오도스는 순수하고 경건한 문체가 돋보이는 반면, 도시 귀족 출신 오비디우스는 세련되고 수사학적인 문체가 두드러진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재해석도 인상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통해 세계를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들 생각에, 천둥과 번개는 제우스가 벼락을 내리칠 때 일어나는 일이고, 화산 폭발은 거대한 산에 갇혀 있는 괴물이 탈출하려 애쓸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북두칠성은 여신의 명령으로 수평선 아래로 지는 법이 없었다. 저자가 보기에 신화는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의 과학’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비인간적인 주술과 마법에 대한 숭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思考) 혁명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총 100편의 예술 작품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음미하다
서양에서는 중세가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잃어버린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부활’시키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명장면들을 캔버스에 실감 나게 재현했다. 중세의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역동적인 신화의 향연을 화폭에 펼쳤다. 중세 천년 동안 억눌려 있던 인간의 자각과 욕망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욕망의 재현은 바로크 시대에 가면 절정에 이른다.
이 책 표지에도 실린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였다. 그는 관능적인 육체 묘사와 역동적인 움직임, 빛과 그림자 기법 등을 이용해 인간 내면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선과 악 등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파에톤의 추락」은 하늘을 올라가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는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밀도 있게 그려냈다.
시대가 다르고 사는 곳도 바뀌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신화를 읽고 재해석하면서 마음속에 ‘자기만의 신전’을 지어왔다. 이러한 찬란한 발자취를 담아내기 위해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수십 명의 예술가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창작한 회화 및 조각 작품 총 100편을 정선해 수록했다.
조각은 주로 작자 미상의 고대 작품이 많고, 카노바 등 근대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회화는 대부분 르네상스 이후의 작품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자크 루이 다비드,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 장 제롬, 마티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등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500년간 거장들의 작품을 가려 뽑아 이 책 한 권에 모았다. 텍스트와 함께 다채로운 이미지와 걸작을 감상하다 보면, 독자들은 다양한 시선으로 신화를 음미하고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