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로마사를 말할 수 없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추천 도서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고전 총서 수록 도서
『리비우스 로마사』는 2000년간 가장 정통한 로마 이야기로 인정받는 책이다. 이 책은 14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되었으나 2000년 동안 상당 부분 유실되어, 현재는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1-10권과 21-45권, 총 35권이 전해지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Ⅱ』는 원서 6-10권을 담았다. 이 책은 기원전 389년에서 기원전 293년까지 약 백 년 동안 벌어진 끝나지 않는 전쟁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백 년 동안 공화정 로마와 주변국은 이탈리아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끝없이 싸운다. 이 책은 역사라는 무대에서 잇따라 벌어진 동맹과 파기,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 그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여기에 『로마제국 쇠망사』(편역), 『로마사론』, 『고대 로마사』 등 다수의 로마사 관련 도서를 번역하여 로마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입증한 전문 번역가 이종인의 섬세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이, 독자들이 이 책을 한층 정확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를 집필했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이 세기의 명저는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이러한 문장과 어휘의 특성으로 『리비우스 로마사』는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리비우스 로마사』는 분량이 방대한 만큼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과 감동이 가득하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는 세계 교양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6권 카밀루스와 만리우스
제7권 쿠르티우스의 자기희생과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제8권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와 무스 데키우스의 데보티오
제9권 카우디움 협곡에서의 대참사
제10권 에트루리아 및 삼니움과의 전쟁
연대기
작품 해설 | 이종인
살루스티우스(Gaius Sallustius Crispus),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와 함께 ‘로마의 위대한 3대 역사가’로 손꼽히는 리비우스는 오늘날 파두아로 알려진 이탈리아 북부의 파타비움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대의 혼란 가운데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기원전 49년에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의 내전이 있었고, 기원전 44년에는 카이사르가 암살되었으며, 그 뒤 기원전 42년부터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리비우스는 그리스에서 공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리비우스는 그리스로 가지 못한 대신 로마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해 정계에 입문하는 정상적인 길도 막혔다. 그래서 리비우스는 정부의 관직을 맡은 적도 없고, 원로원 의원으로 선출된 적도 없으며, 군 장교가 되지도 못했다. 정치적 명성을 쌓을 수 있는 길이 전부 막혔지만, 대신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그는 로마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요 문인이며 정치가였던 키케로를 사숙하면서 수사학과 철학에 심취했고,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을 바탕으로 문필 생활에만 전념한다.
리비우스는 그의 필생의 역작이 될 『로마사』를 기원전 30년경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원전 25년경 가장 먼저 『로마사』(Ab Urbe Condita Libri, 약칭 Ab Urbe Condita) 첫 1~5권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발간 즉시 높은 반응과 인기를 끌어 그 이전에 저술된 로마 역사서는 모두 빛이 바랬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리비우스를 가리켜 “고대의 가장 웅변적인 저술가”라고 찬양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는 그의 문체를 가리켜 “크림 빛이 도는 풍요로움”이라고 평했고,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그 문장이 평담하면서도 유원하다”고 극찬하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Herodotos)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사가”라고 평가했다. 이는 『로마사』의 가치와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평가들이다.
리비우스는 『로마사』를 10권씩 한 단위로 묶어 14단위(140권)까지 썼고, 생애 마지막에 141~142권까지 쓰고서 종결점이 되는 150권까지는 마치지 못한 채, 기원후 17년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두 전사가 양군의 사이의 빈 공간에 우뚝 섰을 때, 그들 주위에 서 있던 많은 병사들의 가슴은 희망과 공포로 조마조마해졌다. 갈리아 전사의 엄청나게 큰 덩치는 로마인 전사를 압도했다. 그는 왼손에 잡은 방패를 앞에 내밀면서 그의 칼을 크게 휘둘러 로마인 적수의 무기와 크게 부딪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만리우스는 자신의 방패로 적의 방패 아래쪽을 내리친 다음, 칼을 높이 치켜들고 갈리아 전사와 그의 무기 사이로 재빨리 달려들었다. 그는 적수의 몸 가까이 바싹 붙었기 때문에 부상을 당할 염려는 없었다. 그는 적의 배를 한 번 찌르고 곧바로 다시 찌름으로써 적의 배와 허리를 크게 절개했다. 적은 머리부터 고꾸라지더니 다리 위에서 큰 대자로 뻗어버렸다. 만리우스는 시체를 더 이상 훼손하지 않았고 단지 피에 물든 적의 목걸이torque를 떼어내어 그 자신의 목에 둘렀다. 갈리아 인들은 찬탄이 뒤섞인 공포와 함께 만리우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로마인들은 참호에서 뛰쳐나와 동료를 맞이하러 갔다. 그들은 만리우스를 칭찬하고 축하하면서 독재관에게 데려갔다. 병사들이 운문 형태로 된 거친 농담을 해대는 중에, “토르콰투스(목걸이의)”라는 이름이 들려왔고, 이때로부터 이것이 그의 별명으로 채택되어 만리우스 가문의 후손들도 그렇게 불렀다. 독재관은 그에게 황금 관을 선물로 주었고, 전 병사들을 모아놓고 그의 감투 정신을 높이 칭찬했다.-p.114
이해(기원전 326년)에, 부채에 의한 노예화 법 조항이 폐지되면서 로마인의 자유는 말하자면 두 번째 탄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관련 법 조문의 변경은 돈을 빌려주었던 어떤 남자의 이례적인 욕정(동성애)과 잔인함 때문에 성사되었다. 그 남자는 루키우스 파피리우스인데, 채무자 가이우스 푸블릴리우스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파피리우스에게 매인 몸이 되었다. 채무자가 청년인데다 미남이었기 때문에 채권자의 동정을 살 만도 한데 오히려 채권자 파피리우스의 욕정과 폭력을 부추겼을 뿐이었다. 채권자는 그 청년의 아름다움을 부채에 대한 추가적 보너스 정도로 여기면서 음란한 암시로 청년을 유혹하려 했다. 청년이 그런 부끄러운 수작에 등을 돌리자, 채권자는 빚을 진 자는 노예로 팔려갈 처지라는 사실을 자꾸 상기시키면서 청년을 협박하고 겁을 주었다. 마침내
채권자는 청년이 채무자라는 곤궁한 처지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더 높이 생각하는 것을 보고서 청년을 발가벗겨서 채찍질을 했다. 푸블릴리우스는 채찍을 맞아 온몸에 피를 흘리는 상태로 거리로 달려 나가 채권자의 욕정과 폭력을 고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에게 동정을 보냈고 또 그에게 가해진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폭력에 분노했다. 군중은 그들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식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우려했다.
그들은 떼를 지어 포룸으로 몰려가서 원로원 건물 앞에 쇄도했다. 갑자기 군중의 소요 사태를 접한 두 집정관은 황급히 원로원 회의를 소집해야 되었다. 의원들이 원로원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군중은 의원들의 발밑에 쓰러지면서 그 청년의 피 흘리는 등을 가리켰다. 그날 한 개인의 가혹한 학대를 당하는 것을 계기로 하여 강력한 채권의 족쇄가 깨트려졌다. 두 집정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법안을 민회에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죄를 저질러서 선고를 기다리는 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사슬에 묶이거나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며, 빚을 진 자가 빚을 갚으려고 할 때에 채무자의 재산은 압수가 될 수 있으나 그의 인신은 몰수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부채 때문에 갇힌 사람들은 풀려났고, 부채로 인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향후 금지되었다. -p.236~237
우리가 이 군대를 살린다면 조국을 살리는 게 됩니다. 우리가 이 군대를 다 죽여 버린다면 우리는 조국을 버리는 겁니다. 당신들은 항복이 수치스럽고 굴욕적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국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우리의 죽음만큼이나 우리의 굴욕을 통해서도 구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엄청난 것이라 해도 이 굴욕에 승복합시다. 신들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이 필연에 굴복합시다. 집정관들이여, 가서 당신의 무기를 포기함으로써 도시를 되사들이십시오. 우리의 조상들이 황금으로 되사들였던 것처럼.” -p.27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 동안 서양 교양인의
필독서로 꼽혀온 세기의 명저
“로마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다른 누구보다도 리비우스에게 기인한다.”
- R. S. 콘웨이
시중에 로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여러 권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로마제국 쇠망사』, 몸젠(Theodor Mommsen)의 『로마사』, 그리고 한 권으로 된 『하이켈하임 로마사』(현대지성) 등 여러 책이 사람들에게 로마를 전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 목록에 가장 중요한 책이 빠져 있었다. 바로 『리비우스 로마사』이다. 이 책은 로마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저작물이다. 당대 역사가가 썼다는 점과 로마에 대해 가장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와 관련된 책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당초 150권으로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리비우스는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142권까지만 쓰고 생을 마감했다. 이 중에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1~10권, 21~45권, 총 35권이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아스(Aeneas)가 이탈리아에 정착한 이야기(기원전 753년)에서 시작하여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로마 건국을 지나 리비우스 자신이 살았던 아우구스투스(Octavianus Gaius Julius Caesar) 시대까지, 약 744년간의 로마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로마의 리비우스”
로마 역사문학의 정점
『리비우스 로마사』는 출간됐을 때부터 큰 인기를 끌어 이미 당대에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 Cocceianus), 플루타르코스(Lucius Mestrius Plutarchus) 등 로마 제정기의 많은 작가가 이 책을 출처로 삼아 역사서를 남겼다. 로마 시대 작가 율리우스 옵세퀜스(Julius Obsequens)는 기원전 249년~기원전 12년 사이 로마 시대에 일어났던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담은 그의 책(Liber de prodigiis)의 출처로 『리비우스 로마사』를 언급한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를 썼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명저는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 가치와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문체가 큰 몫을 차지한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문학평론가이자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는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를 가리켜 “크림 빛이 도는 풍요로움”이라고 평했고,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그 문장이 평담하면서도 유원하다”고 극찬했다. 또한 그는 리비우스를 가리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사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에게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로마의 끝나지 않는 전쟁
『리비우스 로마사Ⅱ』는 원서 6-10권을 담았다. 이 책은 기원전 389년에서 기원전 293년까지 약 백 년 동안 벌어진 끝나지 않는 전쟁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백 년 동안 공화정 로마와 주변국은 이탈리아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끝없이 싸운다. 이 책은 역사라는 무대에서 잇따라 벌어진 동맹과 파기,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 그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특히 8-9권에서 다루는 ‘삼니움 전쟁’을 주목할 만하다. 기원전 343년에서 기원전 29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로마는 이탈리아 중남부를 통일하여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또한 삼니움 전쟁 중에 벌어진 여러 전투 가운데 카우디움 협곡에서의 대참사를 계기로 초기 로마군의 체질이 개선된다. 『리비우스 로마사Ⅱ』는 이러한 로마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포착하여 마치 실제 장면을 목격하는 것과 같이 독자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