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인류의 지성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들려준 ‘행복한 삶’의 비결
이 책은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가능하며, 유지되고 발전하는가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스로 이해하고 강의하기 위해 정리한 글이다. 1차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에우데모스가 스승의 강의를 필기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다시 원고를 정리해서 이 책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즉, 이 책은 ‘행복’이라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주제에 관해 인류 최고의 철학자가 제자와 아들과 공유한 매우 드문 ‘핫 콘텐츠’이다. 2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 저작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εὐδαιμονία, 에우다이모니아)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미덕(아레테)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결과나 보상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사람들이 선택하고 싶어 하고,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족하는 상태를 말한다. 여러 감정과 욕망, 행동이 이성과 지성으로 잘 다스려지고, 지속적으로 삶의 의미를 충족하는 상태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후에 느끼는 성취감과 성장, 깨달음과 만족감 등이 어우러져 인생의 행복을 이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통해 행동을 낳는 지식, 실생활로 이어지는 지식을 강조했다는 면에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체계와 영국의 공리주의, 서양 경험주의를 낳았고, 그것이 실용주의와 과학주의로 이어지면서 서양 철학의 중요한 뼈대를 형성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그리스어 원전을 꼼꼼한 해제 및 각주와 더불어 매끄럽게 옮긴 역자는 이 책에서도 380개의 세심한 각주와 군더더기 없이 전체를 꿰뚫는 해제, 그리고 중요 그리스어 용어 15개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이성과 지성이 활동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와 변주, 어울림이 결국 ‘에우다이모니아’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독자들은 지적인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1권 인간에게 “좋음”이란 무엇인가
제1장 인간은 모든 행위에서 “좋음”을 추구한다
제2장 정치학은 인간에게 가장 좋음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제3장 정치학은 정밀학문이 아니다
제4장 가장 좋음인 행복과 관련된 문제
제5장 삶의 세 가지 유형: 향락적인 삶, 정치적인 삶, 관조적인 삶
제6장 좋음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
제7장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살핀 후, 최종적이고 자족적인 좋음인 행복에 관한 정의에 도달한다
제8장 행복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 대중이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일치한다
제9장 행복은 어떻게 얻는가
제10장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제11장 살아 있는 사람의 행운과 불운이 죽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제12장 미덕은 칭찬받을 만한 것이지만, 행복은 그 이상이다
제13장 미덕에는 지적 미덕과 도덕적 미덕이 있다
제2권 도덕적 미덕이란 무엇인가
제1장 도덕적 미덕은 습관을 통해 얻는다
제2장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을 피한다
제3장 미덕 행함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도덕적 성품을 습득했다는 증표다
제4장 미덕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들
제5장 미덕은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 성품이다
제6장 미덕은 중용을 선택하는 성품이라는 점에서 악덕과 다르다
제7장 개별적인 미덕에 적용한 중용의 원칙
제8장 지나침과 모자람은 서로 대립하고, 중용과도 대립된다
제9장 중용을 위한 실천적인 지침
제3권 미덕과 악덕
제1장 칭찬과 비난의 대상은 자발적인 행위들
제2장 이성적 선택
제3장 숙고의 본질과 대상
제4장 바람의 대상은 좋은 것 또는 좋아 보이는 것이다
제5장 미덕과 악덕은 우리 책임이다
제6장 용기
제7장 용기, 비겁, 무모
제8장 용기라 불리지만 용기가 아닌 다섯 성품
제9장 용기와 고통
제10장 절제는 신체적인 즐거움과 관련 있다
제11장 절제와 무절제
제12장 무절제와 자발성
제4권 다른 미덕들
제1장 후함: 적은 재물과 관련된 미덕
제2장 통이 큰 것: 큰 재물과 관련된 미덕
제3장 포부가 큰 것: 큰 명예와 관련된 미덕
제4장 작은 명예와 관련된 미덕
제5장 온화함: 분노와 관련된 미덕
제6장 사교와 관련한 미덕
제7장 진실함: 언행과 관련한 미덕
제8장 품격 있는 재치: 노는 것과 관련한 미덕
제9장 수치심
제5권 정의
제1장 정의와 불의
제2장 미덕 전체로서 정의, 일부 미덕으로서 정의
제3장 분배 정의
제4장 바로잡는 정의
제5장 교환 정의
제6장 정치적 정의
제7장 자연적 정의와 법적 정의
제8장 자발성과 비자발성
제9장 자발적으로 당하는 불의의 문제
제10장 법적 정의를 바로잡아주는 공정함
제11장 자신에게 불의를 행함이 가능한가
제6권 지적 미덕
제1장 바른 이성
제2장 미덕은 지성과 욕망의 결합체
제3장 학문적 인식
제4장 기술
제5장 실천적 지혜
제6장 직관적 지성
제7장 철학적 지혜
제8장 실천적 지혜와 정치
제9장 잘 숙고함
제10장 이해력
제11장 통찰력
제12장 실천적 지혜와 영리함
제13장 실천적 지혜와 미덕의 관계
제7권 즐거움의 본질: 자제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제1장 절제와 자제력과 인내심에 관한 통념
제2장 자제력 없는 것과 관련된 통념과 난제
제3장 자제력 없는 것과 무지
제4장 자제력이 없다는 것이란
제5장 짐승 같은 성품
제6장 여러 종류의 자제력 없음
제7장 자제력 없는 것, 무절제, 인내심 없는 것
제8장 자제력 없는 것과 무절제
제9장 자제력 있는 것
제10장 자제력 없는 것과 성품
제11장 즐거움과 좋음에 관한 통념
제12장 즐거움과 관련된 통념에 대한 검토
제13장 즐거움과 행복
제14장 신체적인 즐거움과 인간 본성
제8권 사랑 (1)
제1장 사랑에 관한 통념과 난제
제2장 사랑의 대상
제3장 세 종류의 사랑
제4장 완전한 사랑
제5장 성품에서 나오는 사랑
제6장 여러 종류의 사랑이 지닌 특징
제7장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사랑
제8장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제9장 사랑과 정의
제10장 사랑과 정치체제
제11장 정치체제, 정의, 사랑
제12장 친족 간의 사랑
제13장 동등한 사람들 간의 사랑
제14장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사랑
제9권 사랑 (2)
제1장 주고받는 것과 관련한 원칙
제2장 여러 종류의 사랑 간의 우선성
제3장 사랑의 종료
제4장 사랑과 자기애
제5장 사랑과 호의
제6장 화합
제7장 도움을 주는 것과 받는 것
제8장 두 종류의 자기애
제9장 행복과 사랑
제10장 친구는 얼마나 많아야 하는가
제11장 친구는 언제 필요한가
제12장 사랑이란 삶을 함께하는 것
제10권 즐거움과 행복
제1장 즐거움에 관한 상반된 견해
제2장 즐거움은 좋음이라는 견해
제3장 즐거움은 유익하지 않다는 견해
제4장 활동이라는 즐거움
제5장 즐거움의 종류
제6장 행복
제7장 관조적 활동이라는 행복
제8장 도덕적 활동은 차선의 행복이다
제9장 윤리학, 입법, 정치체제
해제 | 박문재
중요한 용어와 개념
아리스토텔레스 연보
지은이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17세 때 어머니마저 여의자 후견인 프록세노스는 스승 플라톤이 있던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로 그를 보냈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헤르메이아스의 조카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逍遙學派)의 기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대부분은 이 기간에 쓰였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나서 아테네에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자 불경죄로 고발당한다. 이에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나, 그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지성과 관심 분야의 폭 그리고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가 다룬 분야는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넓었다. 대표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포함, 『수사학』, 『시학』, 『형이상학』, 『정치학』, 『자연학』, 『범주론』, 『명제론』 등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선악보다 훨씬 폭이 넓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여기서 “좋은 것”은 본성에 부합하는 것을 가리키며, 저자는 인간에게 가장 좋고 즐거우며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귀납적으로 추적해나간다.
옮긴이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자체로 좋음인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하는 것, 보는 것, 어떤 즐거움과 명예처럼 다른 것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추구되는 것인가? 사람들이 다른 것을 위해 이것을 추구하더라도, 얼마든지 이것들도 그 자체로 좋음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자체로 좋음인 것은 좋음의 원형뿐이고, 다른 것은 아예 없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원형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반면, 우리가 앞서 말한 것도 그 자체로 좋음이라면, 좋음에 대한 정의는 모든 데서 같아야 한다. 이는 흰 눈에서나 흰 납에서나 희다는 정의가 같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명예와 지혜와 즐거움이 왜 좋음인지에 대한 설명은 서로 다르고 구별된다. 따라서 하나의 원형에 대응하는 공통적인 좋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다른 무엇을 위해 추구하는 것보다 더 최종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다른 것을 위해 바라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는 것이, 다른 어떤 것을 위해 바라는 것보다 더 최종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다른 것을 위해 바라지 않고 언제나 그 자체로 바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최종적이라고 부른다.
다른 무엇보다도 행복이 그러한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것이다. 행복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선택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반면, 명예나 즐거움이나 지성이나 온갖 미덕은 우리가 그 자체로 선택하기도 하지만(그것을 통해 다른 어떤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그것들을 선택할 것이므로), 행복을 위해서, 즉 그것을 통해 행복해지리라 여겨 그것들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위해 행복을 선택하거나, 일반적으로 행복 외의 다른 어떤 것을 위해 행복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1권 인간에게 “좋음”이란 무엇인가, p.32, 35
즐거움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왔다. 그렇게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에,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사람마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즐거움과 고통을 우리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전체 논의에서는 반드시 이것을 다루어야 한다. 즐거움이나 고통을 올바르게 느끼는지, 아니면 그릇되게 느끼는지가 우리 행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즐거움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들다. 하지만 기술이든 미덕이든 언제나 더 힘든 것과 관련이 있다. 더 힘든 것을 이루어내야 더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도 미덕과 정치학은 즐거움과 고통을 깊이 다룬다. 즐거움과 고통을 제대로 잘 사용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잘못 사용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제2권 도덕적 미덕이란 무엇인가, p.68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것을, 정의롭게 행하게 하고 정의로운 것을 바라게 하는 그런 성품을 정의라고 함을 우리는 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불의한 것을, 불의하게 행하게 하고 불의한 것을 바라게 하는 그런 성품을 불의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도 이것을 논의의 기초로 삼자.
성품은 지식이나 능력과는 다르다. 능력과 지식은 같은 것이 반대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성품은 자신과 반대되는 것과 관련되지는 않아 보인다. 예컨대, 건강한 사람은 건강과 반대되는 것을 행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을 행한다. 건강한 사람이 걷는 것처럼 걸을 때, 사람들은 그가 건강하게 걷고 있다고 말한다.
-제5권 정의, p.171
어떤 행위의 목적은 그 행위의 출발점이 되지만, 즐거움이나 고통으로 파괴된 사람에게는 그 출발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이 목적을 위해 그리고 이 목적에 따라 자기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악덕은 그 출발점을 파괴한다. 따라서 실천적 지혜는 인간에게 좋음과 관련해 이성을 수반한 참된 실천적 성품일 수밖에 없다.
기술은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실천적 지혜는 그렇지 않다. 즉, 기술에서는 어떤 나쁜 목적을 달성하려고 의도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을 선택할 수 있지만, 실천적 지혜는 다른 미덕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선택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천적 지혜는 기술이 아니고 일종의 미덕이다.
이성을 지닌 혼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실천적 지혜는 학문적 인식과 관련된 부분과는 다른 부분, 즉 의견을 만들어내는 부분에 따른 미덕이다. 의견과 실천적 지혜는 둘 다 변하는 것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천적 지혜는 단지 이성을 수반한 성품은 아니다. 성품은 망각될 수 있지만, 실천적 지혜는 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제6권 지적 미덕, p.225-227
어떤 즐거운 것이 항상 즐거울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우리 본성 속에는 한 가지만 있지 않고 다른 것도 있어, 둘 중 한쪽이 활동하면, 다른 쪽에게는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는, 우리 본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고통스럽지도 즐겁지도 않게 된다. 만일 우리 본성이 단일하다면, 같은 활동이 언제나 가장 즐거워진다.
그러므로 신은 항상 하나의 단일한 즐거움을 누린다. 운동만 활동인 게 아니라 운동하지 않는 것도 활동이고, 즐거움은 운동하는 것보다 운동하지 않는 것 속에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은 “모든 변화는 달콤한 것”이라고 했지만, 변화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악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사람이 나쁜 사람이듯, 변화가 필요한 본성도 나쁜 본성이다. 그런 본성은 단일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제7권 즐거움의 본질: 자제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p.294-295
서로가 처음에 얻으려고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얻을 때마다 다툼이 일어난다. 자기가 바랐던 것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키타라 연주자에게 더 훌륭한 연주를 해줄수록 더 많은 보수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튿날 키타라 연주자가 약속된 보수를 달라고 요구하자, 그 사람은 즐거움에 대해 즐거움으로 갚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된 것으로 대답했다. 만일 양쪽이 함께 바란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쪽은 즐거움을 원했고 다른 쪽은 금전적인 이득을 원했으므로, 한쪽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지만 다른 쪽은 얻지 못했으므로, 두 사람이 공동으로 얽힌 일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각자는 필요한 것을 얻고 싶어 자기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가치를 정하는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가치 정하는 일을 맡기는 듯하다. 사람들은 프로타고라스도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것을 가르칠 때마다 배우는 사람에게 그것을 배워 뭘 할 수 있을지 예상하고 값을 매겨보라고 한 후에, 그렇게 제시된 값을 수업료로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이런 문제에서 “보수는 먼저 정하는 법”이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제9권 사랑 (2), p.342-343
하지만 대중을 고귀하고 선한 것으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대중은 수치심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때 복종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도 수치심이 아니라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그러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감정을 따라 살면서 각자가 원하는 즐거움과 그런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추구하고, 그와 반대되는 고통은 피한다. 또한, 대중은 고귀하고 진정으로 즐거운 것을 경험한 적이 없으므로, 그게 무엇인지조차 전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자들을 말로만 바꿀 수 있겠는가? 성품 속에 오랫동안 깊이 박힌 것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을 훌륭하게 해주는 것이 그 안에 갖추어져 있다면 그것을 미덕으로 바꾸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제10권 즐거움과 행복, p.410-411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관한
인류 최고 철학자의 경험적 통찰
이 책은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가능하며, 유지되고 발전하는가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스로 이해하고 강의하기 위해 정리한 글이다. 1차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에우데모스가 스승의 강의를 필기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다시 원고를 정리해서 이 책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즉, 이 책은 ‘행복’이라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주제에 관해 인류 최고의 철학자가 제자와 아들과 공유한 매우 드문 ‘핫 콘텐츠’이다. 2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 저작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썼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데, 그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든 생물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 가장 좋은 것인 행복은 가장 즐거운 것일 수밖에 없다고도 하며,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천착해 들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그리스인들은 윤리와 관련해, 선악 개념이나 당위와 의무가 아니라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개념을 사용해 “좋은 것과 즐거운 것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간 본성에 들어맞는 행복의 조건을 찾기 위해 거의 모든 인간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단지 겉모습뿐 아닌 미덕과 중용, 지성과 행동, 이성 등을 두루 살펴야 했다.
둘째, 저자는 모든 참된 지식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서 분리될 수 없고, 반드시 현실 삶 속에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과 즐거움에 관한 사람들의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의 백미는 단지 결론만 알고 끝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성실한 추론 과정과 통찰력을 확인하는 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 관한 글을 여러 편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그는 미덕이 특정한 사물의 고유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눈은 제대로 볼 수 있을 때만 선한 눈이다. 눈의 고유한 기능은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에게도 고유한 기능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성(‘로고스’)에 따른 혼(‘프쉬케’)의 활동이었다. 그는 혼의 이성적인 활동은 인간의 모든 의도적인 행위의 목적인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향한다고 가르쳤다.
평생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지적 기초를 놓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εὐδαιμονία, 에우다이모니아)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미덕(아레테)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결과나 보상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사람들이 선택하고 싶어 하고,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족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고유한 본성에 주어진 일(‘에르곤’)을 해야 좋은데, 그 일을 위해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도 이성과 지성의 활동(‘에네르게이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설령 먹고 마시는 것이나 단순히 감각적으로 살아가는 일에 잠깐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런 것은 동물에게도 있으므로 인간 본성에 고유하게 좋은 것은 아니다.
여러 감정과 욕망, 행동이 이성과 지성으로 잘 다스려지고, 지속적으로 삶의 의미를 충족하는 상태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행복은 이성과 지성의 활동이므로, 첫 번째 활동은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생겨나는 여러 감정과 욕망을 이성으로 다스리고, 두 번째 활동은 “행위” 자체를 이성으로 다스리는 것과 관련 있다. 이 통제가 올바르게 이루어졌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성품(‘에토스’) 또는 상태(‘헥시스’)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미덕”(‘아레테’)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후에 느끼는 성취감과 성장, 깨달음과 만족감 등이 어우러져 인생의 행복을 이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독자들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주제(여기서는 ‘행복’)를 놓고, 이성과 지성을 총동원하여 하나의 수준 높은 결론에 도달하는 한 철인(哲人)의 진지한 성찰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숨겨지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관조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단답형 결론이 아니라, 이 책의 내용으로 우리를 설득하며 강의하고 있는 현자의 미소를 떠올리며 찬찬히 읽는다면 평생 행복을 위한 사고 실험의 기초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380개의 세심한 각주와 전체를 꿰뚫는 해제,
중요 용어 15개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으로 만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
이러한 수준 높은 작업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다양하다. 2,300여 년이라는 시간적 격차, 그리스인들의 논리 체계와 다소 지루하고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논증 방식, 비슷비슷한 철학적 개념과 단어들, 원문을 성실하게 옮기더라도 뜻을 파악하기 힘든 저자의 난해한 글쓰기 방식 등… 마치 만화책만 좋아하던 초등학생이 노벨문학상 저자의 소설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듯, 읽고 바로 이해하는 독서에만 익숙한 독자들에겐 이 책이 즉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해주진 못한다.
하지만 인생 전체에 걸쳐 지속하고 깊어지는 행복의 길을 찾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보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들려준 강의를 정리한 이 책을 통해 ‘회복탄력성’과 ‘긍정심리학’이 결합된 개념인 ‘에우다이모니아’(행복)에 이르는 길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 그리스어 원전을 꼼꼼한 해제 및 각주와 더불어 매끄럽게 옮긴 박문재 번역가는 이 책에서도 380개의 세심한 각주와 군더더기 없이 전체를 꿰뚫는 해제, 그리고 중요 그리스어 용어 15개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역자는 과거의 번역어와 비교하면서 더 합당한 번역어를 제시하기 위해 애썼다.
과거 출간된 『니코마코스 윤리학』 여러 번역본에 대한 독자평을 보면, “뭔가 의미 있는 것 같지만 당최 다 읽고도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주를 이루었다. 원문 자체의 난해함과 독자들이 철학적 개념과 논증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베테랑 에디터가 5번 이상의 교정과 윤문을 통해 한달음에 책을 읽어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다른 버전과 비교하거나 원문 혹은 영역본을 참고하지 않고도, 한글 번역 본문 자체만으로 뜻이 명백하게 통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을 따라, 독자들도 문장 위에 켜켜이 쌓인 문화적, 시간적 더께를 조금씩 걷어내면서 일상에서 자기에게 꼭 맞는 행복의 통로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이 책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최고의 행복인, “관조적 활동”, 즉 철학하는 즐거움을 경험해보도록 하자.